선종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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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시대는 [[불교]]와 [[유교]]의 균형적인 발전을 토대로 매우 안정되었으며, 외교에서도 [[거란]]을 포함한 [[송나라|송]], [[일본]], [[여진]] 등과 광범위한 교역을 추진하며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1084년]]에는 승과를 설치하고 불교를 장려하였으며, 변경을 지키는 사졸들에게 저고리와 바지를 하사하였다.
[[1085년]] 왕의 아우 의천(義天)이 몰래 송나라에 들어가 2년 동안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오자 [[송나라]]에서 항의하였으나 선종은 사절을 보내 이를 무마시켰다. [[의천]]을 태운 배가 예성강 포구에 도착하자 선종은 친히 마중나가 환영의식을 성대하게 하였는데 의천은 불경과 경서 1,000권을 바쳤고,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며, 송, 요, 일본 등지에서 서적을 사들여 거의 4,
[[1091년]] 예부의 주장으로 국학(國學)에 72현의 상을 벽에 그려 붙였는데, 그 차례는 송나라 [[국자감 (중국)|국자감]]의 예를 따르고, 그 복장은 10철(十哲)을 모방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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