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 영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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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부 조례===
[[1784년]], [[토머스 제퍼슨]]은 이 지역을 주로 만들어 미합중국에 가입시켜 "애팔래치아 산맥 너머"의 영역의 일부로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제퍼슨은 동해안의 주들이 그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도록 제안했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문제는 이 지역에서 [[노예 제도]]를 받아들일지 여부였다.
 
[[1787년]], [[연합회의]]에서 북서부 조례가 성립되면서 그 영역이 되었다. 버지니아는 오하이오 남부의 토지 소유를 인정받았고, 펜실베이니아는 [[오하이오 강]] 수원 인근 토지의 영유를 인정받았다. 나머지 펜실베이니아 경계의 서쪽과 오하이오 강 북쪽은 새로 만들어진 미국 최초의 자치적인 영역인 [[북서부 영토]]의 일부이며, 의회의 권한 아래의 문민정부가 통치하게 되었다. 당시 모든 주들은 [[북서부 영토]]의 오하이오 영토에 대한 토지에 영유권을 철회했다. [[코네티컷 주]]와 [[버지니아 주]]는 독립 전쟁에 참전한 병사에 대한 보상을 위해 영토 내의 토지를 사용할 권리를 남겼다. 그러나 유보지에 대한 주권은 없는 것으로 되었다. 각각 코네티컷 서부 유보지, 버지니아 군사 지구로 알려졌다.
 
[[북서부 조례]]는 영토의 [[노예제도]]를 금지하고 제퍼슨이 제안한대로, 땅은 미래의 주로 미합중국에 수용하기로 했다. ‘오하이오 영토’는 [[북서부 영토]]를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되었다. [[1802년]]의 〈권한부여법〉에 의해 새로운 주로 승격하는 방법을 규정하였고, [[1803년]] [[2월 19일]], 오하이오가 그 법에 의해 최초로 주로 승격하며 미합중국의 가맹 주로 인정을 받았다. 오하이오 주 의회가 처음 소집된 [[1803년]] [[3월 1일]]에 기념식을 거행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