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무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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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정책 ===
==== 신도(神道) ====
일본의 전통적인 토속신에 대한 제사를 중시했던 덴무 천황은 지방에서 행해지던 제사의 일부를 국가 단위의 제사로 승격시켰다.<ref> 오늘날 그의 신도 진흥 정책은 외래 문화의 침투에 맞서 일본의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천황의 노력이라는 것도 각지의 전통적인 제사를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천황가의 시조로 여겨지던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와의 관계에 따라 각지의 신을 평가해 계급을 매겨 천황 중심으로 체계화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천황 권력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또한 각지에서 모셔지고 있던 현지 신사와 여러 제의는 보호와 교환의 형태로 국가의 관리와 통제에 따랐으며, 고대의 국가 신도가 형성되는 토대가 되었다.</ref> [[파일:Naiku 01.JPG|right|250px|thumb|이세 진구. 내궁(內宮)]] 덴무 천황이 특별히 중시한 것은 이세 신궁이었다. 일찌기일찍이 임신의 난 때, 군사를 거느리고 [[이세 국|이세]]를 찾았던 그는 세키타가와(迹太川) 부근에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을 올렸는데, 이는 구체적으로는 이세 신궁에서 모시고 있는 신이기도 한 아마테라스에게 전승을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난을 승리로 이끈 뒤, 천황은 딸인 오오쿠노 히메미코를 이세 진구에 보내어 사이오(齋王)로서 이세 진구를 섬기게 했다. 덴무 4년([[675년]]) 2월 13일에는 딸 도오치노 히메미코(十市皇女)와 조카(덴지 천황의 딸) 아베노 히메미코(阿閉皇女, 훗날의 [[겐메이 천황]])가 이세 신궁에 참배했다. 이세 진구의 모든 신전을 20년에 한 번씩 다시 짓는다는 시키넨센구(式年遷宮)의 제도를 처음 발안한 것도 덴무 천황이다.<ref>시키넨센구를 처음 행한 해에 대해서는 덴무 14년(685년)과 지토 2년(688년)이라는 두 개의 설이 전해지고 있지만, 덴무 천황의 발의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분명하다.</ref> 이세 신궁을 이스즈가와(五十鈴川) 강가의 현 위치에 세운 것도 덴무 천황으로, 그 이전에는 미야가와(宮川) 상류의 다키하라노미야(滝原宮)에 원래의 이세 신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라는 신격을 처음으로 창조한 것은 다름아닌 덴무 천황이었다는 설도 있다.<ref>아예 있지도 않은 것을 창작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세 지방 안에서 모시던 태양신을 천황가가 모시던 신과 동일화하여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라는 신격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재야학자 쓰쿠시 노부자네筑紫申真의 설).</ref>사이오라는 것도 《고지키》나 《일본서기》에 따르면 유랴쿠 천황 때부터 시작해 스이코 천황 때까지 있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덴무 천황의 딸인 오오쿠노 히메미코가 최초의 사이오라는 설이 있다.(고대사학자 겸 군마 대학 명예교수 모리타 테이森田悌의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