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액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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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폰티액 전쟁’이라는 용어는 많은 부족을 통합하여, 협상의 전면에 섰던 오타와 족의 [[폰티액 추장]]을 따서 이름지어졌다.<ref>Dixon, ''Never Come to Peace'', 303n21; Peckham, ''Pontiac and the Indian Uprising'', 107n.</ref> 이외에도, ‘'''폰티액의 반란'''’, ‘'''폰티액의 봉기'''’ 등 다양하게 불린다.<ref>Nester, ''"Haughty Conquerors"'', x.</ref> 당초 전쟁의 이름은 “키야스타와 폰티액의 전쟁”이었다. 키야스타는 구야스타의 다른 읽기법이며 영향력 있는 [[세네카족]], [[밍고]]의 추장이었다. [[1851년]] [[프랜시스 파크맨]]이 《폰티액의 음모》(''The Conspiracy of Pontiac'')를 출판한 후, “음모”라는 명칭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파크맨의 영향력 있는 책은 1세기 가까운 사이의 전쟁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증언이 되어, 지금도 출판되고 있다.<ref>McConnell, "Introduction", xiii; Dowd, ''War under Heaven'', 7.</ref>
 
파크맨을 시작으로 백인들은 인디언의 “추장 (치프)”을 “부족장” 또는 “지도자”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디언 부족은 합의제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몇몇 개인이 부족을 정리하거나 주도하는 “수장”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디언 추장은 “중재자”, “촉구자” 또는 “봉사자”일 뿐이었으며<ref>『Readings in Jurisprudence and Legal Philosophy』([[w:Felix S. Cohen|Felix S. Cohen]]、1952年)</ref>, 폰티액과 구야스타가 전쟁을 이끈 것은 아니었다. 추장은 중재자로서, 백인과의 협상 전면에 서야 했다. 백인은 이것을 보고, 폰티액과 구야스타가 전쟁을 이끌고, 음모를 세우고, 선동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전쟁 명칭을 붙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