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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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는 앞으로부터 이탈리아 역사에서 시칠리아의 중요한 역할이였다. 새로운 문화와 경제, 산업의 성장은 많은 가문들의 성장을 자극시켰다. 예를 들어서 [[플로리오]]가문 , [[두크로트]]가문, [[루텔리]]가문, [[산드론]]가문, [[휘타케르]]가문, [[우트베지오]]가문을 비롯한 여러가문들을 말이다. 20세기 초에 팔레르모는 도시 성벽을 넘어 비아 델라 리베르탈른(Via della LibertàIn)같은 도로를 북쪽을 따라 확장시켰다. 이 도로는 곧 이탈리아에서 [[아르누보]]양식의 많은 건물들로 자랑하게된다. 이 건물들 상당수는 유명 건축가인 [[에르네스토 바실레]]가 디자인한것들이다. 이탈리아의 유명 호텔인 The Grand Hotel Villa Igiea는 에르네스토 바실레가 플로리오가문을 위해 디자인한것으로 팔레르모 아르누보 양식의 좋은 예이기도 하다. [[팔레르모 대극장]]은 같은 시기에 [[지오반 바티스타 필리포 바실레]](Giovan Battista Filippo Basile)에 의해 디자인 되었으며 루텔리 가문의 회사인 루텔리 & 마치(Rutelli & Machi)사의 건물 용도로 건설되었으며 1897년에 문을 열게된다.
 
제 2차 대전 기간에 팔레르모는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않았다. 7월에 연합군들은 팔레르모의 항구와 그 주변에 엄청난 양의 폭격을 했었고 모든게 파괴되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도시 중심지는 전부 복구하지 못햇고못했고 움푹패인 벽들이나 폐허가된 건물들은 일상적인 모습이다.
 
1946년 팔레르모는 노르만왕궁에서 [[시칠리아 지역 의회]]로부터 1947년에 특별 지위 지역으로 공표된다. 이로인해서 팔레르모의 미래는 다시 밝아보였다.수많은 기회가 수 십년째 주었으나 무능과 기술력 부족, 부패 그리고 재량권 남용으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