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리얼 퍼트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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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4월 20일]], 퍼트넘은 전날 벌어진 [[렉싱턴 전투]]의 소식을 듣고, 쟁기를 농장에 던지고 말을 타고 100마일(160km)을 8시간 넘게 달려 다음날 케임브리지에 도착했다. 그래서 퍼트넘 애국자를 위해 활동하는 것을 제안했다. 퍼트넘은 대륙군에 가입하여 제 3 코네티컷 연대의 대령에 임명된 직후에 코네티컷 민병대의 준장이 되었다. 퍼트넘은 코네티컷 민병대를 이끌고 보스턴으로 가서 소장으로 임명되어 [[대륙군]]이 창설되기 이전 [[알테마즈 워드]] 장군에 이어, 두 번째 지휘관이 되었다.
 
퍼트넘은 [[벙커 힐 전투]]에서 작전 단계에서도, 전장에서도 전군을 이끌었다. 이 전투 동안 퍼트넘은 [[윌리엄프레스콧 대령]]에게 대령에게 ‘적의 눈에 흰자가 보일 때까지 쏘지마라’라고 명령했다(이 말을 퍼트넘이 한 것인지, [[윌리엄 프레스콧]] 대령이 한 것인지는 논쟁이 분분하다). 이 명령은 미국 독립 전쟁을 통해 가장 기억되는 단어가 되었다. 이 명령은 야산에 참호를 만들어 놓았던 뉴잉글랜드 부대가 실탄이 모자랐기 때문에 중요했다. 푸트넘은 1775년 7월 대륙군이 조직되자, 대륙군에 가입을 했다. 제3 코네티컷 연대의 대령으로 임무를 맡았으며, 이후 코네티컷 민병대의 준장이 되었다.
 
===롱아일랜드 그리고 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