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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심열 (불교)||불교 용어인 심열(心悅)}}
 
'''심열'''(沈悅, [[1569년]] ~ [[1646년]])은 조선의[[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병조판서]] [[심충겸]]의 아들로, [[조선 명종|명종]]비 [[인순왕후]]의 조카이다. 성천부사 심예겸에게 입양되었다. 자는 학이(學而), 호는 남파(南坡),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광해군 때에는, 심돈(沈惇)<ref>《광해군일기》6년(1614) 9월 14일 7번째 기사</ref> 또는 심형(沈悍)<ref>《광해군일기》14년(1622) 11월 5일 3번째 기사</ref>
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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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조 ===
[[인조반정]] 직후, 다시 [[경기도]] [[관찰사]]<ref>《인조실록》1년(1623) 6월 26일 1번째 기사</ref>를 거쳐, [[호조판서]]<ref>《인조실록》2년(1624) 2월 14일 2번째 기사</ref>, [[한성부 판윤]]<ref>《인조실록》3년(1625) 10월 6일 4번째 기사</ref>, [[형조판서]]<ref>《인조실록》3년(1625) 11월 23일 2번째 기사</ref>, [[강화부]] 유수<ref>《인조실록》5년(1627) 5월 11일 2번째 기사</ref>, [[공조판서]]<ref>《인조실록》8년(1630) 5월 17일 3번째 기사</ref>, 판[[의금부]]사<ref>《인조실록》14년(1636) 3월 22일 2번째 기사</ref>, 지[[중추부]]사<ref>《인조실록》14년(1636) 12월 21일 5번째 기사</ref>, 1638년 [[의정부]] [[우의정]]<ref>《인조실록》16년(1638) 9월 15일 2번째 기사</ref>에 올랐다. [[우의정]]으로서, [[호조판서]]<ref>《인조실록》16년(1638) 9월 16일 1번째 기사</ref>와 영[[경연]]관사<ref>《인조실록》16년(1638) 11월 6일 2번째 기사</ref>를 겸직하였다. 1639년 진하사(進賀使)로 [[청나라]] [[심양]]에 다녀왔다.<ref>《인조실록》17년(1639) 7월 30일 3번째 기사</ref> 1640년 [[우의정]]을 스스로 사직하고, 판[[중추부]]사<ref>《인조실록》18년(1640) 1월 25일 1번째 기사</ref>를 거쳐, 1643년 [[의정부]] [[좌의정]]<ref>《인조실록》21년(1643) 3월 6일 2번째 기사</ref>에 오르고, 곧 이어, [[의정부]] [[영의정]]<ref>《인조실록》21년(1643) 5월 6일 2번째 기사</ref>에 올랐다. 1644년 병이 심하여, [[영의정]]을 스스로 사직하고, [[좌의정]]<ref>《인조실록》22년(1644) 3월 12일 1번째 기사</ref>으로 체직되었다가, [[영중추부사]]<ref>《인조실록》22년(1644) 3월 14일 2번째 기사</ref>로 전임되었다.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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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의 저술가]]
[[분류:영의정]]
[[분류:조선의 외교관]]
[[분류:역대 병마절도사]]
[[분류:청송 심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