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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據菩薩善戒經卷一序品載,在家菩薩行財施與法施;出家菩薩行筆施、墨施、經施、說法施等四施;而得無生忍之菩薩則具足施、大施、無上施等三施。俱舍論卷十八舉出八種布施,即:隨至施、怖畏施、報恩施、求報施、習先施、希天施、要名施、為莊嚴心等施。同書卷十八亦舉出施客人、施行人、施病人、施侍病者、施園林、施常食、隨時施等七種布施。舊譯華嚴經卷十二「十無盡藏品」則有修習施、最後難施、內施、外施、內外施、一切施、過去施、未來施、現在施、究竟施等十施。上述乃就布施行為之內容、態度、目的等之不同,而有種種分類方式。又施者、受者、施物三者本質為空,不存任何執著,稱為三輪體空、三輪清淨。〔中阿含卷三十福田經、增一阿含經卷四、卷九、卷二十、大般若波羅蜜多經卷四六九、卷五六九、菩薩地持經卷四、布施卷、大智度論卷十四、卷二十九、瑜伽師地論卷三十九〕(參閱「達嚫」5677) p1901"}}
 
그리고,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3승의 교의에 의거하여, 성문과 연각이 [[자리 (불교)|자리]](自利)에만 치중하는 수행자로서, 이러한 태도에 의해 결과적으로 [[아공]](我空)의 이치만을 깨달을 수 있을 뿐 [[법공]](法空)의 이치는 깨닫지 못한다고 보았다. 즉, 성문과 연각이 완전히 깨달았다고 하는 상태는 단지 [[아공]](我空)의 이치만을 깨달은 상태일 뿐으로 [[부처]]의 상태가 아니며 따라서 그들이 이상으로 하고 있는 [[아라한]]이란 '[[부처]]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아라한]]'이 아니라 [[아공]](我空)의 이치만을 깨달은 [[성자 (불교)|성자]]일 뿐이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대승불교]]에서는 [[성문승]](聲聞乘){{.cw}}[[연각승]](緣覺乘)의 [[2승]](二乘)으로는 '[[아라한]]' 즉 '[[아공]](我空)의 이치는 완전히 깨달은 [[성자 (불교)|성자]]'는 될 수 있어도 '[[아공]]과 [[법공]]을 모두 깨달은 [[성자]]'인 [[부처]]는 영원히 될 수 없다고 보아, [[부처]]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길 즉 [[아공]]과 [[법공]]을 모두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길로서의 자신들의 [[보살승]]과 구별하였고, [[성문승]]{{.cw}}[[연각승]]의 [[2승]](二乘)을 통칭하여 [[소승]](小乘)이라고 폄칭하였다.<ref name="종교학대사전-성문"/> 달리 말하면, {{sfn|운허|loc="[[대승불교]]에서는 [[6바라밀]]을 통해서는 [[부처]]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유정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5%B0%8F%E4%B9%98&rowno=1 小乘(불교소승)|유정]]의 [[깨달음]]을 돕는 실천 즉 [[재시]]{{".cw}}[[법시]]{{.cw}}[[무외시]]의 [[보시]]가2013년 결여된4월 [[4제현관]]이나 [[12연기]]의 [[현관9일에 확인|quote=<br>"小乘(불교소승)|현관]]만을 통해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대승. 승(乘)은 싣고 운반하는 뜻. 사람을 태워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교법. 이 교법 중에서 교(敎)ㆍ리(理)ㆍ행(行)ㆍ과(果)가 모두 심원(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이도 대기이근(大器利根)인 기류(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에 반대되는 것을 소승이라 함. 소승에는 성문승ㆍ연각승 둘이 있다. (1) 성문승. 4제(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4과(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함. (2) 연각승. 12인연을 관하여 벽지불과(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교체(敎體)로 함. 이것은 모두 회신멸지(灰身滅智)의 공적한 열반에 이르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여김. 인도의 상좌부ㆍ대중부 등의 20분파와 동토의 구사종ㆍ성실종ㆍ율종 등."}} 달리 말하면, [[대승불교]]에서는 [[6바라밀]]을 통해서는 [[부처]]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유정 (불교)|유정]]의 [[깨달음]]을 돕는 실천 즉 [[재시]]{{.cw}}[[법시]]{{.cw}}[[무외시]]의 [[보시]]가 결여된 [[4제현관]]이나 [[12연기]]의 [[현관 (불교)|현관]]만을 통해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성문의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