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청년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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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헨리는 다시금 자유롭고 독립적인 군주의 권한을 갖고 싶어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의 긴장이 다시금 감도는 가운데 [[1182년]] 들어 헨리 주위의 사생활 문제도 불거졌다. 그의 곁을 항상 지키던 기사단장 [[제1대 펨브로크 백작 윌리엄 마셜|윌리엄 마셜]]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작자 미상의 ''기욤 르 마레샬의 역사 (L'Histoire de Guillaume le Maréchal)''에는 마셜이 헨리에게 모욕을 당했으며, 그 이유는 그가 젊은 왕의 부인인 마르가리타와 은밀하게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마셜의 주요한 현대 연구자 중 하나인 데이빗 크라우치는 윌리엄이 받은 비난은 사실상 불경죄를 뜻하며, 이는 그 자신의 오만과 탐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젊은 왕이 [[1183년]] 초반에 부인을 프랑스 왕의 궁궐로 보낸 것은 그녀의 불륜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동생 리처드와의 전쟁을 앞두고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하는 것때문이 확실하다.
 
헨리와 마르가리트 사이에는 윌리엄이라는 단 한 명의 자식밖에 없었지만없었는데 태어난지[[1177년]] [[6월 19일]]에 태어났지만 3일 만에 죽었다. 이때의 난산이 마르가리트가 이후 한 명의 자식도 갖지 못하는 불임 상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