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 기관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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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창기 ===
증기 기관차의 역사는 철도의 역사와 그 궤가궤를 연결되어있다.같이한다고 18세기에 만들어진수 있다. 초기의 [[마차철도]]를 제외하면 철도에 있어서철도의 동력원은 전적으로 증기력에게만증기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을 사용한 교통수단의 시도 중 가장 앞서 제시될 수 있는 것은 리처드 트레비딕의 페니다렌 광업용 궤도용 증기 기관차로, 180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트레비딕은 "캐치-미-후-캔(Catch-me-who-can)" 호를 만들어 기동하는 데 성공하지만, 원형으로 깔아놓은 주철제 궤도의 파괴로 안정적으로안정적인 주행하는 것에는주행에는 실패하였다. 이후 1812년에 톱니바퀴식 구동을 채용한 살라망카(Salamanca)호, 1813년에는 점착 운전에 성공한 퍼핑 빌리 호 등이 등장하였다. 이후 1814년 조지 스티븐슨이 현재의 여러 기관차들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블뤼허(Blücher) 호를 만들었으며, 이후 1825년에는 최초의 공공 철도인 스탁턴 앤드 달링턴 철도(Stockton and Darlington Railway)의 로코모션(Locomotion)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이 로코모션 호의 기본적인 설계는 1829년의 로켓(Rocket)호 등에 파급되었으며, 이후 최초의 양산형 기관차인 플래닛(Planet) 형 기관차에 이어지게 되며, 이 시점에서 앞쪽으로 돌출된 횡치식 [[보일러]], 연돌, 크랭크 직접 구동 등과 같은 증기기관차의 기본적인 레이아웃이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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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이르러서는 2~5축의 동륜과 수 개의 종륜에, 백 톤 내지 그 이상의 자중을 가지며, 수 백 마력의 힘으로 여객과 화물을 수송하기에 이른다. 1935년에 등장한 독일의 BR05형 증기기관차는 최고속도 200.4km/h를 달성한 바 있으며, 이후 영국의 A4형 증기기관차는 1937년에 5퍼밀 하구배 구간에서 최고 속도 201km/h를 유지하는 기록을 달성하여 증기 기관차로서는 최고속을 달성하였다. 한편으로, 미국에서는 챌린저(Challenger)형이나 빅 보이(Big Boy)형, Y6b형 등 400톤이 넘는 거구에 수 천톤에 달하는 화차를 단독으로 견인하는 초대형 기관차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2차 대전]]은 이러한 증기 기관차의 발전 경쟁을 중단시켰으며, 1930년대에1930년 경에 등장한 [[디젤 기관차]]는 점차 증기 기관차의 입지를 침식해 가기에 이른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여러 노선에서 무겁고 손이 많이 가는 증기 기관차 대신 무연, 고속, 고 성능을 가진 디젤 기관차를 이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점차 그 입지는 줄어들게 되었다. 증기기관차는 1940년대와 1950년대를1940년대를 피크로, 점차 일선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여 1970년이후로는1970년 경에 이르러서는 주요 산업국가에서 증기기관차를 찾아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한편, 간선망에서 증기 기관차의 역할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지만, 증기 기관차의 독특한 동작 소음과 매연, 그리고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는데, 그 결과 세계 각지에서는 지선 또는 보존 철도 등지에서 관광 용도의 증기 기관차의 복원 운행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개의 나라에서 여객과 화물 일선에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증기기관차는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특별한 장치로서 그 위상을 새롭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