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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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소 ==
=== 윤동주 시인의 언덕 ===
윤동주 시인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공원이다. 실제로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인왕산 부근에 살았었다. 공원은 자하문고개 근처에 위치해있으며 바로 옆의 청운공원은 [[서울]]의 조망명소 중 한 곳이다.
 
=== 필운대 ===
{{본문|필운대}}
조선 중기의 명신 이항복이 살던 곳으로 '필운'은 그의 호이다.
 
=== 속담정약대 ===
[[조선 고종]] 시절 [[대금]]의 명인이였던 정약대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으며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어 나막신에 모래가 가득차면 돌아갔다고한다.
 
=== 강감찬 ===
[[고려시대]]에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이 젊을적에 이 지역의 판관으로 부임을 하였는데 인왕산과 [[북한산]] 일대에 [[호랑이]]가 많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강감찬은 노승으로 변신해있던 호랑이들의 대장을 알아보고 호통을쳤으며 호랑이들은 도망을 갔다고 한다.
 
=== 박태성 ===
[[조선시대]]에 박태성이라는 사람은 [[고양군]]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고 난 뒤에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양군]]에 가려면 무악재를 넘어가야 하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박태성을 태워줘 아버지의 산소까지 데려다주었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데려다주었다고한다. 그뒤로도 호랑이는 40년간 박태성을 도왔고 박태성이 죽었을때 산소 옆에서 같이 죽었다고 한다. 이에 박태성의 후손들은 호랑이를 박태성의 산소 옆에 뭍어주었고 제사까지 함께 지내주었다고 한다. 묘소는 [[북한산]]에 위치해있다.
 
=== 정약대속담 ===
* 인왕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
** 어떤 한 사람이 잘되어 세력이 커지면 그 덕을 입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게 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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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 차돌을 먹고 살기로 사돈의 밥을 먹으랴.
** 아무리 어렵고 고생스러워도 처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싶지는 아니함을 이르는 말.<ref>[http://krdic.daum.net/dickr/contents.do?offset=P000693300&query1=A031160300#P000693300 다음 국어사전]</ref>
 
== 일화 ==
 
=== 정약대 ===
[[조선 고종]] 시절 [[대금]]의 명인이였던 정약대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으며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어 나막신에 모래가 가득차면 돌아갔다고한다.
 
== 설화 ==
 
=== 강감찬 ===
[[고려시대]]에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이 젊을적에 이 지역의 판관으로 부임을 하였는데 인왕산과 [[북한산]] 일대에 [[호랑이]]가 많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강감찬은 노승으로 변신해있던 호랑이들의 대장을 알아보고 호통을쳤으며 호랑이들은 도망을 갔다고 한다.
 
=== 박태성 ===
[[조선시대]]에 박태성이라는 사람은 [[고양군]]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고 난 뒤에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양군]]에 가려면 무악재를 넘어가야 하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박태성을 태워줘 아버지의 산소까지 데려다주었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데려다주었다고한다. 그뒤로도 호랑이는 40년간 박태성을 도왔고 박태성이 죽었을때 산소 옆에서 같이 죽었다고 한다. 이에 박태성의 후손들은 호랑이를 박태성의 산소 옆에 뭍어주었고 제사까지 함께 지내주었다고 한다. 묘소는 [[북한산]]에 위치해있다.
 
== 주변 시설 ==
 
[[서울 사직단]], [[종로도서관]], [[배화여자대학]], [[경복고등학교]], [[배화여자고등학교]], [[필운대]], [[경복궁]], 황학정, 종로보건소, [[안산 (서울)|안산]], [[북악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