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2세 (잉글랜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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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의 불화 ==
그는 캔터베리 대주교 [[랜프랑크]]가 사망하자 잉글랜드 교회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하여 그 후임자를 뽑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시대에 교회가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해 보았을때 이는 매우 무리일 수밖에 없었고 얼마후 [[안셀무스]]를 임명하게 된다. 안셀무스는 당시 왕권을 교권 위에 두려는 윌리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의 사절이 왔을때 다음과 같은 답신을 하였다. ''

{{인용문|왕께서 소유하고 계신 캔터베리의 영지를 대주교령으로 돌리시고 (...) 교황이신 우르바누스 2세의 통치력을 인정해 주시옵소서 (...) 그러면 당신의 곁으로 가리다''. }}

윌리엄은 이러한 제안이 내키지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고 1093년 12월 4일 안셀무스는 정식으로 켄터베리로 부임한다. 그러나 윌리엄은 애초의 약속을 깨고 안셀무스에게 상당한 액수의 세금을 요구하였고 안셀무스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상황은 점차 악화되어 윌리엄은 안셀무스가 로마로 가서 교황이 대주교를 승인했음을 뜻하는 팔리움을 수여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곧 왕이 당시 교황 [[교황 우르바노 2세|우르바누스 2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였다. 이에 안셀무스는 왕이 성직 임명에 관여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결국 1095년에 교황의 사절이 로마에서 팔리움을 캔터베리로 가져왔으나 안셀무스는 왕으로부터 수여받는 것으로 보일수 있다며 이를 거절하였다. 이러한 마찰은 후에 안셀무스가 캔터베리를 떠나 로마로 떠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그가 로마로 떠나자 윌리엄은 기다렸다는 듯이 켄터베리의 대주교령을 몰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