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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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전세는 포르투갈군에게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었다.[[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들을 경영해온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오랫동안 경영해오는 등 식민지 지역에 철저한 기반들을 구축해놓은 상태였는데다 막대한 양의 국가예산을 전쟁 비용으로 쏳아부으며 식민지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을 강력하게 진압했다.그러나 식민지 반란 저항군들도 게릴라 전등으로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초기 식민지 반란 진압에서 시작했던 전쟁의 양상은 사실상 장기전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전쟁 과정에서 포르투갈군과 식민지 반군 모두 수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게다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단적인 흑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국민 다수의 아프리카 흑인들을 억누르고 소수의 백인들이 통치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백인]] 통치를 고착화하려는 계산 아래 포르투갈을 지원하고 [[소련]]과 [[중국]], [[쿠바]],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알제리]], [[탄자니아]], [[기니]], [[소말리아]], [[콩고]], [[리비아]], [[자이르]], [[잠비아]]등 공산권 국가들과 [[발칸반도]]의 [[슬라브]] 국가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등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식민지 반군들을 지원하면서 이 전쟁은 사실상 국제 대리전의 양상을 보였다.미국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지 지배를 포기 안하려는 포르투갈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으나 앙골라의 앙골라해방민족전선만 지원했다.
 
결국 이 전쟁은 1974년 포르투갈의 이스타두 노부 정권이 [[카네이션 혁명]]에 의해 붕괴됨으로써 종결된다. 이후 들어선 포르투갈 임시 정부는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에 대해 독립을 허용하고, 식민지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포르투갈군의 철군을 단행했다. 그와 동시에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등 옛 포르투갈 식민지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포르투갈의 해외식민지는 1999년 중국으로 반환되는 [[마카오]]만이 유일하게 남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