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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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의 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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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수스의 아버지는 [[기원전 97년]]에 집정관을 지낸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이다. 크라수스는 [[동맹시 전쟁]]에서 형제를 잃었고 [[기원전 87년]] [[가이우스 마리우스|마리우스]]와 [[술라]]의 내전기간에 아버지와 또 다른 형제를 잃었다. 마리우스가 로마로 돌아와 술라파를 숙청할때숙청할 때 크라수스는 [[킨나]]의 박해를 피해서 [[히스파니아]]로 도망했고 [[기원전 84년]] 킨나가 죽은 뒤 아프리카로 가서 술라의 편에 합세했다. 술라가 로마로 다시 돌아올때돌아올 때 크라수스는 술라의 충실한 협력자로 함께 로마로 입성했는데 이때 로마의 성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크라수스는 큰 공을 세웠다.
 
로마로 복귀한 크라수스는 자신의 가문의 재산을 찾는데 힘썼다. 술라가 마리우스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들어가자 그는 이에 편승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마리우스파의 재산을 빼앗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크라수스는 은광산의 노예거래, 화재가 난 집에서의 재산 거래등거래 등 악랄한 방법으로 엄청난 재산을 불려나간 것으로 악명 높았다. 당시 크라수스는 엄청난 재산을 모았고 술라의 사후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귀족이 되었다.
 
그러나 크라수스는 로마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정치적으로 평판은 좋지 않았다. 당시 상당한 군사적 업적을 쌓은 폼페이우스에 비해 자신은 군사적 업적이 없었기에 [[집정관]]직등 로마의 공직에 오를 가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