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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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중국]]의 [[로마 가톨릭교회]]'''를 다룬 문서이다. [[중국]]에서도 [[대한민국한국]]과 같이 로마 가톨릭교회를 '''천주교'''(天主教)라고도 부른다. 천주교라는 명칭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기독교]]에서 [[흠숭]]하는 유일신 [[하느님]]을 중국에서 천주(天主)로 번역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 신해 혁명 이전 ==
1576년 [[마카오]]에 중국 최초의 가톨릭 교구가 세워져, [[중국 대륙]] 전체를 관장하였다.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중국 가톨릭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교구가 분할되어 새로 설립되었다. 연대 순으로 나열하자면 [[난징 시]](1660년), [[푸젠 시]](1696년), [[샤먼 시]](1883년) 순이다.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는 중국인들에게 종교적으로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가톨릭교회가 죽은 가족에게 제사를 바치며 예를 표하는 중국 현재의 유교적 관습을 미신행위로 보고 엄격하게 금지한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조상 제사는 옛날부터 내려온 미풍양속이었지만, 교황청에서 바라볼 때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우상숭배에 불과했다. 그 결과, 중국 내에서 가톨릭교회의 교세는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였다.
 
== 중화민국 ==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는 중국인들에게 종교적으로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가톨릭교회가 죽은 가족에게 제사를 바치며 예를 표하는 중국 현재의 유교적 관습을 미신행위로 보고 엄격하게 금지한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조상 제사는 옛날부터 내려온 미풍양속이었지만, 교황청에서 바라볼 때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우상숭배에 불과했다. 그 결과, 중국 내에서 가톨릭교회의 교세는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였다. 조상 제사 금지에 관한 교황청의 가르침은 20세기에 와서 바뀌게 되었다. [[교황 비오 12세]]가 1939년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조상 제사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조상 제사에 대해 관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교황청 포교성은 《이제는 분명히(Plane Compertum)》라는 담화문을 통해, 중국인 신자들에게 조상 제사가 거행될 때 단순히 사회적 관습의 의미로만 거행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되지만, 만일 그 예절 속에 종교적이거나 미신적인 요소가 있을 경우에는 소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당부하였다. 교황청이 이렇게 조상 제사를 부분적으로나마 허용한 배경에는 조상제사가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니라 사회 문화적 풍속이라고 전향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정부는 1943년 단기간에 [[바티칸 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교황의 훈령은 중국 교회의 상황을 거의 혁명적인 방식으로 바꾸었다. [[제2차 세계대전세계 대전]]이 종식된 후, 약 4만여 명의 중국인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중화민국[[국공 내전]] 시절이전의 중국 대륙의 가톨릭교회는 20개의 대교구, 85개의 교구, 3080개의 선교단체, 2557명의 사제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
{{본문|중국 천주교 애국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중국 공산당]]은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철저하게 국가의 감독과 감시 아래 두고 있다. 법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모든 종교는 공산당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만 포교 활동을 할 수 있다. 현재 모든 가톨릭교회의 경신례는 공산당 정부가 승인한 [[중국 천주교 애국회]] 소속 성당에서만 행해질 수 있다. 중국 천주교 애국회는 [[교황]]의 수위권을 거부한 채 중국 공산당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지시에 불응하며 저항한 성직자들은 체포되어 [[궁핀메이]] 추기경처럼 장기간 감금당하거나 고문 및 순교 등의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중국을 점령하기 위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자들이 보낸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웠다. 오늘날에도 가톨릭 성직자들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감시와 통제는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주교들과 사제들은 자신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힘든 노역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