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 (은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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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설화에 따르면 [[은나라|은(殷)나라]] 후기 주왕(紂王) 때 [[상나라]] 제후국에서 벼슬을 계승하였던 리(利)씨 가문의 후손 이징(利徵)은 주왕이 [[달기]]의 간교에 빠져 폭정을 하자, 정치를 바로 잡을 것을 강하게 직간(直諫)하다가 죽었다. 부인 설화부인(契和夫人)은 아들 이정(利貞)을 데리고 산속으로 피신하였고, 이정(利貞)은 기진맥진 하던 중 오얏나무 열매를 따먹고 목숨을 부지하였는데, 그러한 이유로 리(理)씨을 오얏 리(李)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정(利貞)은 순임금의 후손이 봉분된 규성 진씨 제후국 진(陳)나라(諸侯國)의 대부(大夫)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정(利貞)의 선조는 순(舜)임금 시대 법관을 지낸 고요(皐陶)라고 한다. 당태종은 헌원-소호-고요-이정-노자-이연으로 족보을 정리하였다. 당태종 후손 가운데는 헌원이 주왕조의 조상이라는 사마천의 주장을사서을 믿어서바탕으로 일부하여 주씨로 바뀌었다바꾸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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