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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황'''(鮮于璜, [[107년]] ~ [[125년]])은 자는 '''백겸'''(伯謙)이며, [[후한]]의 안문 태수이다.
 
== 생애 ==
선우황은 [[산시성]] 다이셴(代縣) 부근을 관할하는 안문(雁門) 태수가 되었고 [[125년]]에 죽었다. 선우황이 죽은 지 40년 뒤, 그의 손자는 [[165년]]에 선우황비(鮮于璜碑)을 만들면서 조부을 칭송하고 미화하는 내용과 함께 [[기자]](箕子)의 후손으로 비문에 기록하였다. 선우황은 특별한 업적은 없으나, 선우황비(鮮于璜碑)는 중산국의 비밀을 풀어줄 유물로 간주되어 학계의 관심이 대상이 되었다.
 
[[1979년]] 선우황비가 하북성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비문의 내용은 선우황(鮮于璜)이 은나라 기자(箕子)의 후예다, 라는 것이었다. 중국 학자들은 선우국이 조선의 선(鮮)과 봉지 우(于)를 딴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기자의 후예가 선우국(鮮虞國) 지배했다는봉분되었다는 이론을 만들기도 하였으나, 선우국(鮮虞國)의 우(虞)와 봉지 우(于)는 한자가 다르기 때문에 선우국(鮮虞國)의 명칭이 [[북적|백적]] 선우부(鮮虞部)에서 왔다는 이론을 뒤집지 못하였다하였다. 그래서 현재 중국의 공식 기록에는 선우황(鮮于璜)은 [[선우국]]과 무관한 사람이고, [[선우국]]과 [[중산국]]은 [[북적|백적]]이 세운 국가로 정의되고 있다.
 
[[국어 (역사서)|국어]](國語) 정어(鄭語)에 따르면, [[기원전 774년]] 선우국(鮮虞國)은 [[주나라]]을 이루는 족속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사라졌으나 중국 고대 복성 가운데 선우씨(鮮虞氏), 선우씨(鮮于氏), 선양씨(鮮陽氏)씨가 있다. 언뜻 유사해 보이지만 모두 다른 성씨이다. 일부 중국 학자는 선(鮮)과 봉지 우(于)를 따서 선우씨가 되었고, 선우(鮮虞)가 선우(鮮于)로 바뀌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리는 본질적으로 이율배반적으로 기자의 후손이 선(鮮)과 봉지 우(于)를 따서 선우씨가 되었다면, 선우(鮮虞)씨가 선우(鮮于)씨로 바뀔 필요 자체가 없다.
 
선우황(鮮于璜)은 선우(鮮于)씨이다. 성 자체만 보면 선우국(鮮虞國), 중산국과 관련이 없다. 후한 시대에는 선우국, 중산국이 은의 후예라는 설들이 양산되었고, 이러한 내용은 몇몇 사서에 기록되기도 하였다. 선우황 손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선우황 비문에 기자의 후손으로 기록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선우국, 중산국이 희성 제후국이란 기록도 존재한다. 사마정(司馬貞)이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역사서)|사기]](史記)을 주석한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중산은 옛 선우국이며 성은 주나라 '''희성'''(姬姓)"이라 했다. 근거는 주나라 초기 [[하북성]]은 희성 공족이 봉분된 [[연나라]]지역이었고, 중산국이 위나라의 공격으로 1차 멸망한 이후에 위날 공족이 중산국을 다스렸다. 최종 멸망 시에는 [[조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한나라]] 시대에는 유방의 고향 친구 [[노관]](盧綰)이 봉분되었고, [[한 무제]](漢武帝)시대에는 [[우거왕]]의 아들 [[장항|위장]](衛長)이 봉분되어 기후(幾侯)라는 벼슬을 받는다. 이와같이 기원전 한나라 시대, 선우 중산국에는 다양한 지배 세력이 존재하였고 그들이 지역명을 근거로 성으로 창성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위나라]] 공족, [[노관]], [[우거왕]]의 아들 [[장항|장]]은 희성이다. 조나라는 조성이다.
 
선우(鮮虞)씨가 선우(鮮于)씨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중국 학자의 주장일 뿐, 고증된 내용도 아니고 인정되는 학설도 아니다. 선우(鮮虞)씨, 선우(鮮于)씨와 유사한 선양(鮮陽)씨는 [[중산국]]과 아무런 관련성도 제기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선우씨(鮮虞氏), 선우씨(鮮于氏)가 선우국, 중산국과 연루된 학설은 한자, 또는 발음의 동질성에 기인한 이론일 가능성도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자신의 가계을 미화하기 위해 고대 제왕과 가계을 연결시키는 일이 있었다. 따라서 선우황(鮮于璜) 손자는 기자의 후손을 주장하기는 하였으나, 출신은 모호하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