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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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고려]] 중엽 [[한시]]와 [[향가]]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중엽 [[한시]]와 [[향가]]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말 망국의 설움을 주제로 삼은 [[삼은]],[[원천석]]의 시조들이 등장하고 뒤를 이어 문학적 소양을 갖춘 조선의 사대부 계층에 의해 더욱 활발히 창작되었다. 특히 [[계유정난]] 시기에 [[사육신]]의 시조가 다수 전한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창작 계층이 [[양반]] 외에 [[중인]]과 평민 계층까지 확대 되었고 가단을 조직하여 시조창을 하는 등 활발한 창작이 진행되었다. 근,현대에 들어서 근대신문들에 발표된 애국 시조, 대일항쟁기 [[최남선]]을 통한 [[시조부흥운동]]을 거쳐서 [[이태극]] 등의 창작을 통한 [[현대시조]]로 재탄생되었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아직도 한국의 신문사에서 해마다 열리는 문학작품의 등용문인 [[신춘문예]]에서는 [[시조]]부분을 두고 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있다.
 
== 주제와 형식의 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