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희 (1949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새 문서: '''진도희 (陳都希)''' 70년대 한국 영화배우 (본명: 김태야) 1949년 12월 부산 출생 (본적: 경북 선산 구미) 1965년 동래여고 재학 시 이화여... |
편집 요약 없음 |
||
8번째 줄:
1965년 동래여고 재학 시 이화여대 백일장 당선
1968년 서라벌 예대
1970년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편입 (1973년 졸업)
43번째 줄:
'''생애'''
영화배우 진도희는 1949년 부산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사촌 형제는 고 김승목 국회의원이다.
53번째 줄:
'''춘추전국시대의 스타'''
이 후 진도희는
'''문학 소녀에서 등단 시인으로'''
진도희는 서구적인 마스크와 훤칠한 외모로 한 때 글래머 여배우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일본의 잡지 등에 지적인 학사 배우로 대서 특필 되기도 했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 각종 문학상들과 이화여대 백일장 수상까지 휩쓸었고 훗날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분에서 당선을 하여 오랜 기간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필명은 본명이다.
'''잠적'''
1973년 정인숙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송상옥 원작의 [죽어서 말하는 여인]에 캐스팅 되었으나 갑작스런 하길종 감독의 국토개발징집으로 인해 고영남 감독으로 바뀌면서 영화가 처음의 시나리오와 다르게 만들어지자 영화계에 실망을 느껴 잠적해버렸다. 그러자 와병설, 재벌 2세와의 결혼설 등 숱한 추측성 기사가 주간지를 장식했다. 진도희가 왕성한 영화 활동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은막에서 잠적을 한 이유들 중에는 당시 유학파 금융재벌 3세와의 열애가 실제로 작용했다. 그와 딸을 하나 두었으나 오래 전에 헤어진 뒤 한 때는 아이의 양육권 마저도 포기했었다고 전해진다. 하길종 감독은 제대 후 영화 <바보들의 행진>과 <별들의 고향(속)>으로 화려하게 컴백하면서 진도희의 잠적을 몹시 아쉬워했다고 한다.
'''메니저 김학훈'''
진도희의 메니저는 도금봉, 김혜정(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전처), 윤정희(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처)를 담당했었던 김학훈이다. 그는 진도희를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TV출연도 까다롭게 선별하여 오락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지 못하게 할 만큼 공을 들였다. 그는 진도희를 간혹 유명인들과 TV에 출연하여 기타를 연주하거나 동시대 톱 탤랜트들과
'''국제 영화제 여배우 대표'''
진도희는 1973년에 영화배우 남궁원과 함께 대한민국 여배우 대표로
'''
진도희는 3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스타의 반열에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 하였으며 수십 장의 잡지 표지 모델, 각종 패션 쇼 특별 출연 등 쉴 틈 없이 활동을
'''“젖소부인” 논란'''
영화배우 한지일은 70년대 톱스타로 부상했던 ‘진도희’의 예명을 의도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