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맹파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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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조의 결성 ===
그러나 [[1980년대]] 초가 되어도 노동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야학]] 등의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불합리한 처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들은 사측에서 이름만 걸어놓거나 협력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이른바 '어용노조'를 대신할 민주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84년]] [[6월 9일]]에는 [[대우어패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같은 해 [[6월 11일]]에는 선일섬유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ref>서해문집, 내일을 여는 역사 24호, 2007, 224~226쪽</ref>
 
당시 결성된 섬유산업 노동조합이었던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선일섬유 노동조합, [[효성물산]] 노동조합은 서로 합동교육 등을 통해 교류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교류는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의 구속에 대해 이들 노동조합이 동맹파업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제공하였다.<ref>서해문집, 내일을 여는 역사 24호, 2007, 229~230쪽</ref>
 
=== 노동탄압 ===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이러한 민주노조 운동을 탄압하였다. 그러자 [[1983년]]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독재정권의 노동탄압과 블랙리스트의 철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1984년]] [[3월 10일]]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가 결성되어 노동자의 권익개선을 위한 운동을 시작하였다. 한편, 같은 해 9월과 10월에는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창립되었던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였다.<ref name="서해근현대사"/>
 
이와 같이 노동자들이 [[노동권]]의 보장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커져가던 1985년, 정부가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김준용과 사무국장, 여성부장을 구속하자 구로공단의 노동조합들은 동맹파업을 결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