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겐신: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Volkonskij (토론 | 기여)
Volkonskij (토론 | 기여)
125번째 줄:
* 형으로부터 호명을 받아 성인식을 하고 난 이후 나가오 가문의 가신들은 물론 호족들의 마음도 휘어잡았다.
* 겐신은 신속한 용병 투입과 임기응변적 전술이 그의 생애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다케다 신겐]], [[호조 우지야스]]라는 당대 굴지의 무장과 전투를 계속하여 다케타 신겐에 비견되는 능력은 높게 평가된다.
* 전략가, 전술가로서뿐 아니라, [[와카]]<sup>{{Tooltip||和歌}}</sup>에 능통하고, 명필이기도 했다. [[고노에 다네이에]]<sup>{{Tooltip||近衞稙家}}</sup>로부터 와카의 비법을 전수받는 등, 황실과의 교류도 깊은 문화인이었다. 특히 [[겐지모노카타리]]<sup>{{Tooltip||源氏物語}}</sup>를 비롯하여 연애물을 즐겨 읽었고, 상경했을 때에는 와카대회에서 참가해 뛰어난 가카<sup>{{Tooltip||雅歌}}</sup>(렌카<sup>{{Tooltip||戀歌}}</sup>, 남여간의 애정노래)를 낭독해, 참가자 전원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 [[나나오 성 전투]]때, 겐신은 유명한 주산야<sup>{{Tooltip||十三夜}}</sup>를 작시했다고 한다.
* [[비사문천]]<sup>{{Tooltip||毘沙門天}}</sup>의 열렬한 신자로, 자신의 기에도 비<sup>{{Tooltip||毘}}</sup>라는 문자를 사용했다. 이것은 [[비사문천]]을 닮기를 바라는 것으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 청년기까지는 소도슈<sup>{{Tooltip||曹洞宗}}</sup>의 고찰 린센지<sup>{{Tooltip||林泉寺}}</sup>에서 스승 덴시쓰 고이쿠로부터 선을 배우고, 상경때에는 린자이슈<sup>{{Tooltip||臨濟宗}}</sup>의 고찰 다이토쿠지<sup>{{Tooltip||大徳寺}}</sup>에서 참선을 하고 <sup>{{Tooltip||宗心}}</sup>이라는 법명을 받는다. 만년에는 신곤슈<sup>{{Tooltip||真言宗}}</sup>쪽에 관심을 가져 고야 산<sup>{{Tooltip||高野山}}</sup> 곤고부지<sup>{{Tooltip||金剛峰寺}}</sup>의 [[세인]]<sup>{{Tooltip||清胤}}</sup>으로부터 덴보칸조<sup>{{Tooltip||伝法灌頂}}</sup>(불법을 전수받는 의식)을 받는다. 그리고, 아쟈리겐다이소토<sup>{{Tooltip||阿闍梨權大僧都}}</sup>라는 직위를 받는다.
* 일반적으로 "싸움에는 뛰어나고 내정에는 서툴다"는 인상이지만, 실제에는 영내의 물품의 유통관리를 정비해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겐신이 사후, 가스가 산성에는 27,140량이 저축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에스기 군의 군자금은 통상교역에 의해서 얻었다고 한다. [[라이 산요]]<sup>{{Tooltip||頼山陽}}</sup>(에도시대 문장가)가 미담이라고 격찬했던 '적에게 소금을 보낸다.'라는 에피소드도, 실제로는 군비조달의 필요성 때문에 가이상인에게 소금판매를 금지하지 않았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에치고노쿠니|에치고]] 국 영주들의 이반에 대해서는 자주 고민을 한 것 같다. 겐신도 신겐과 같이 영주들의 연합맹주라는 지위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 전쟁시에는 정보를 얻는 것을 중시하여, 노키자루<sup>{{Tooltip||軒猿}}</sup>이라는 닌자 집단을 거느렸다고 전해진다.
* 육척(약 180cm) 가까이되는 장부라고 말하는 유력설이 있지만, 왜소하다는 기록도 문헌에 존재하고, 최근에는 유품의 갑옷의 크기로 미루어 오척이치(약 156cm)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남성의 평균신장(약159cm)보다 체격이 좋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