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실학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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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세관 ===
그는 평생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광주군 (경기도)|광주]](현 안산시) 첨성리(瞻星里)에 머물러 학문을 연마하였는데, 항상 국가 부흥을 위한 자기의 이상과 포부를 저술하여 [[불교]]와 [[성리학|세유(世儒)]]의 실용적이지 못한 학풍을 배격하고 실증적(實證的)인 사상을 확립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사농합일(士農合-)을 주장했고 아울러 과거제도의 재검토를 제시했다.
 
중농주의 계열의 실학자로서 이익은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에 국가 및 개인 경제의 목표가 있다고 여겼고, 토지의 고른 분배를 강조하면서 토지 경작을 기본적인 경제 정책으로 삼고 [[중국]]의 [[정전제|정전제(井田制)]]를 바탕으로 한 [[한전법|한전법(限田法)]]의 시행을 제창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상품화폐 경제의 발달이나 재산 증식 행위를 크나큰 죄악으로 생각했는데, 특히 화폐나 시장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아예 화폐 사용을 중지하자는 폐전론(廢錢論)을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