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산텐의 노르베르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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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베르토는 독일, 프랑스, 벨기에, 트란실바니아 등지에서 지지자들을 얻어 플로르프, 비비에르, 생조스, 아르덴, 큐시, 라온, 리에주, 앤트워프, 카펜베르크, 그로스바다인(오늘날의 [[오라데아]]) 등지에 수도원 분원을 세웠다. 샹파뉴의 테오발드 2세 백작 역시 프레몽트레회에 입회하기를 희망했지만, 노르베르토는 그에게 평신도로 남아 결혼할 것을 권고하였다. 노르베르토는 몇 가지 규칙을 세우고, 수도회의 하얀색 수도복을 테오발드 백작에게 수여하였다. 그리하여 1122년 프레몽트레회 제3회가 생기게 되었다. 노르베르토는 프랑스, 벨기에,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탄켈름의 요청에 따라 앤트워프에 퍼진 성체성사에 대한 이단적 사상과의 영적 전투에 참여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러한 연유로 노르베르토는 ‘앤트워프의 사도’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1126년 [[교황 호노리오 2세]]는 노르베르토를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로 서임하였다. 대주교로 착좌한 노르베르토는 먼저 자신이 보기에 지나치게 나태하고 어설픈 대교구 내 규율에 대한 개혁 작업에 들어갔으며, 이에 대한 반발로 여러 차례 그에 대한 암살 기도 사건이 있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