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파일:Goethe 1774.JPG|thumb|right|250px|초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llang|de|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젊은 베르터의 고뇌’)》은 [[독일]]에서 태어난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술해서서간체 소설이다. [[1774년]]에 출판한 서간체 소설이다출판되었다.
 
《젊은 베르테르의책은 슬픔》은괴테의 [[요한 볼프강성공작으로서, 폰 괴테]]를무명작가였던 유명한괴테를 작가유명인 반열에 올려놓은올려 성공했다고 할 만한놓은 작품이다. 당시 [[유럽]]의 많은 젊은이가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 베르테르처럼 옷차림을 하고 다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작품을 읽고 베르테르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한 사람도 {{출처|2,000여 명으로 추정된다.<small>{{출처}}</small>
 
[[슈투름 운트 드랑]] 시기의 대표작으로, 《젊은작품의 베르테르의저술 슬픔》이 성립된 계기에 관해서는 [[요한 볼프강 폰배경으로는 괴테]] 자신의 세 가지 개인상개인적 체험을 들 수가 있다. 즉 [[:de:Charlotte Buff|샤를로테 부프]]와 한와의 연애, 친구 [[:de:Karl Wilhelm Jerusalem|카를 예루잘렘]]의 실연과 자살, [[:de:Maximiliane von La Roche|막시밀리아네 브렌타노]]와 한와의 교섭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괴테는 [[1772년]] 5월, 법률의 실무 견습차 [[베츨라어]]에 소재한 고등법원에서 일하면서, 알베르트의 원형이 된 [[:de:Johann Christian Kestner|요한 케스트너]]와 그 사람과 약혼한 여성인약혼녀인 샤를로테 부프와부프, 그리고 유부녀인 헤르트(Elisabeth Herd) 부인을 사랑하는 카를 예루잘렘을 알게 되었다. 샤를로테 부프를 향한 사랑을 고민하던 [[요한괴테는 볼프강 폰 괴테]]는 [1772년]] 9월에 [[베츨라어]]를 떠나 귀향하는 도중 [[코블렌츠]]에서 막시밀리아네를 알게 되었다. [[요한괴테의 볼프강 폰 괴테]]가 귀향한귀향[1772년]] 10월 말에는 [[베츨라어]]에서 예루잘렘이 자살했다.
 
이런 외부상외적 여러 사건을사건들을 연결하여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괴테는 베르테르의 비극을 창조했다. 이것은 단순히 실연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상사회적 통념 일체를 배척해서라도 인간 본연의 감정을 살리면서살리고 해방된 심정의 발양 권리를 주장하려는 적극인적극적 정열이 넘치는 저작으로서저작이다. 젊은 [[요한작품은 볼프강 폰젊은 괴테]]의괴테의 내면생활을 유감없이 토로했다.
 
== 주요 등장인물 ==
 
* '''베르테르''': 주인공. 젊은 남자. 아직 미혼이고 샤를로테 부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샤를로테 부프에게샤를로테에게 편지 82통을 썼다.
* '''샤를로테 부프'''(로테):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여자이고사랑하지만 알베르트와 혼인하는혼인하게 되는 여성. 베르테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남성이그가 괴로워하는괴로워하고 사정도있음도 이해한다.
* '''빌헬름''': 베르테르의 친구. 작품 속의 여러 편지는편지들은 거의 다 빌헬름에게 보내졌다.
* '''알베르트''': 샤를로테 부프와 혼인하는 남성.
 
== 비판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취지(趣旨)는취지는 당대의 인습과 [[귀족]]사회의 통념에 반대하는 젊은 지식인의 [[우울]]과 열정을 그렸지만그리는 것이었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작품은 뜻하지 않게 [[우울증]]을 전염시키고 자살을 전파한다는 오명을 얻었다.
 
== 영향 ==
=== 베르테르 효과 ===
{{본문|베르테르 효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간될 당시 소위 '베르테르 열병({{llang|de|Werther-Fieber}})라 불리는 현상을 낳기도 하였다. 유럽의 많은 청년들이 소설에 묘사된 주인공 베르테르를베르테르의 모방해옷차림을 자살한따라하였고, 사람이심지어 유럽베르테르를 전역에모방한 늘어났던자살이 일이유럽 전역에 있었다퍼져나갔다.
 
이에 착안해 1974년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David Philips)는 유명인이 자살하고 나서 그것을 모방한 자살이 확산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명명했다.
 
=== 언역기타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애독자였으며, 이 소설을 유럽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 중《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가지고 다니며 읽기도 하였다.<ref>{{두산백과사전|101013000858332}}</ref>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원제인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는 일반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언역하지만, 최근 '베르테르'라는 이름이 일본식 발음에 영향받았다는 비판으로 말미암아 베르테르 대신 '베르터'라고 언역하려는 동향도 있다.<ref>{{뉴스 인용|제목 = '젊은 베르터의 고뇌'|url =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3696|출판사 = 울산매일|저자 = 김병길 기자|쪽 = |작성일자 = 2012-10-22|확인일자 = 2012-12-8}}</ref>
 
== 한국어로 번역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원제인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는 일반으로일반적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언역하지만번역하지만, 최근 '베르테르'라는 이름이 일본식 발음에 영향받았다는 비판으로 말미암아 베르테르 대신 '베르터'라고 언역하려는 동향도 있다.<ref>{{뉴스 인용|제목 = '젊은 베르터의 고뇌'|url =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3696|출판사 = 울산매일|저자 = 김병길 기자|쪽 = |작성일자 = 2012-10-22|확인일자 = 2012-12-8}}</ref>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