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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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조선의 역대 왕비|왕비]]
|재위 = [[1681년]] ~ [[1689년]](왕비 초임)</br>[[1689년]] ~ [[1694년]](폐비)</br>[[1694년]] ~ [[1701년]](왕비 복권)
|별칭 = 왕비, 민씨, 민비폐비
|배우자 = [[조선 숙종|숙종]]
|자녀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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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초비 인경왕후가 죽은 후 1년 후에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김씨와 외가 친척인 [[송시열]]의 추천으로 중궁으로 뽑힌다. 가례 초기부터 숙종의 애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한다. 더욱이 명성왕후의 사후 숙종은 과거 명성왕후에 의해 출궁되었던 궁인 장씨(張氏: 희빈 장씨)를 환궁시켜 후궁으로 삼고 총애하였다.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견제하고자 [[김수항]]의 종손녀인 [[영빈 김씨]]를 간택후궁으로 추천하여 입궐시키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 원자 정호 사태 ==
[[1688년]] [[희빈 장씨|후궁 장씨]](소의 장희빈)가 아들 [[조선 경종|윤(昀)]](후일의 경종)을 낳자 숙종은 이 왕자를 원자를 정하고자 했으나,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들은 원자정호를 뒤로 미룰 것을 주장했다. 송시열 등은 [[송 철종|송나라 철종]]의 고사를 예로 들기도 했다. 원자 정호 문제는 결국 [[기사환국]]으로 이어져 [[1689년]] [[서인]]들이 쫓겨나고 남인들이 집권하였으며 그녀 역시 폐서인되어 [[안국동]] 사가로 내쳐졌다.
 
== 말년 ==
 
 
=== 갑술환국과 복위 ===
폐출된 지 5년이 지난 후인 [[1694년]] 4월 1일, [[숙종]]이 남인들을 몰아내고 서인들을 기용하여 정권을 교체하였는데 이를 [[갑술환국]]이라 한다. 하지만 이 당시 숙종은 폐인(민씨)를 신원하는 자는 역률로 다스린다는 명을 내려 왕비를 교체할 마음이 없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4월 9일, 숙종은 마음을 바꾸어 민씨를 서궁으로 이전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고, 4월 12일 서궁으로 입거한 그녀에게 왕비 복위령이 내려졌다. 동시에 왕비였던 장씨는 국모가 둘일 수 없다는 이유로 왕비의 아래 지위인 빈으로 강등되어 본래의 희빈의 작호를 돌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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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원자(元子)에게 이미 진호(進號)하여 위로 적후(嫡后)에게 올렸으니, 바로 중궁(中宮)의 아들인 것입니다.|『숙종실록 15년 4월 25일(신묘) 10번째기사 中』}}
 
민씨는 복위된 지 8년 만인 [[1701년]] [[음력 8월 14일]] 서거한다. 민씨민씨가 사망하고 2개월 정도가 지난 [[음력 10월 8일]] 숙종은 [[조선 경종|왕세자]]의 생모 [[희빈 장씨에게장씨]]에게 자진을 명한다. 이때 공식적인 죄명은 장씨와 궁인들이 민씨를 저주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진을 명한 이후에 뒤늦게 수사를 시작하는 등 그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아 당시 조정 안팎에서 장씨의 무고의 사실성과 판결에 의구심과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인현왕후는 [[희빈 장씨가장씨]]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숙종실록』 27년 9월 23일자는 왕비 민씨가 친정붙이 민진후(閔鎭厚) 형제에게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빌미가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빌미’란 장씨의 저주로 병에 걸렸다는 뜻이었다. 『숙종실록』은 또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가 임금에게 몰래 (장씨의 저주를) 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숙종은 제주도에 유배 중인 장씨의 오빠 장희재를 처형하라는 명을 내림으로서 숙빈 최씨의 저주설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이 전해져 옛 한글 연구에 참고가 되고 있으나, 소설 내용이 실록 등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다수이고 사건과 인명 표기에도 오류가 많아 사료적 가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은 영`정조대에 남성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밝혀져 인현왕후의 궁인이 아닌 인현왕후의 친족 일족이나, 그녀의 폐출에 반대했던 박태보의 후예가 쓴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ref>환관과 궁녀|박영규 저|P.36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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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질 : [[이재]]
** 큰오빠 : [[민진후]]<ref>한수재선생문집 중 여양부원군문정민공신도비명, 약천집 중 동춘선생묘지문추지 外</ref>
** 큰올케 : [[이단상]]의 사위 ([[김만균]]의 처질녀, [[김창협]]의 처제), [[이덕로]]의 딸
*** 질녀 : [[조규빈]]([[조태채]]의 조카, [[장렬왕후]]의 종손자)에게 출가<ref group="주석">인현왕후가 폐비되어 사가에서 살던 시절 거두어 키웠던 질녀이다.</ref>
*** 질녀 : [[김광택]]([[김만중]]의 손자, [[이사명]]의 사위 [[김용택]]의 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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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부 : [[송상기]]([[김광찬]]의 외손자)의 딸
** 여동생 : [[신석화]]에게 출가([[장렬왕후]]의 이종손녀, [[영풍군부인]]의 질부)
* 어머니(계모(繼母)): [[풍창부부인]](豊昌府夫人) 조씨
** 이복 남동생: [[민진영]]<ref group="주석">[[민치구]]의 고조부이다. [[민치구]]는 [[조선 고종|고종]]의 외조부이다.</ref>
** 이복 여동생 : 이장휘에게[[이장휘]]에게 출가
** 이복 여동생 : 홍우조에게[[홍우조]]에게 출가
* 서모 : 불명
** 서제 : [[민진창]]
** 서제 : [[민진오]]
 
(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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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왕후]]
* [[희빈 장씨]]
* [[조선 경종]]
* [[영빈 김씨]]
* [[숙빈 최씨]]
* [[조선 영조]]
* [[송시열]]
* [[송준길]]
* [[민진원민진후]]
* [[인현왕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