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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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아레초]]에서 출생하여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짐에이전하자 부친을 따라 그곳으로 옮겨 살았다. 그곳에서 [[중세]]의 삼학(三學)을 이수하고 또한 [[몽펠리에]]와 [[볼로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327년 봄 [[아비뇽]]의 성 크레르 교회에서 최초로 라우라를 처음 만났다. 그의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쓴 [[서정시]]는 주로 그녀의 미를여성을 찬미하고 그녀의 죽음을여성을 애도하는 시였다. [[교황]]을 비롯하여 상류층의상류층에게 특별한특별히 대우를대우받아 받아 그들의사람들의 외교사절로외교사절로서 활약한 바도적도 있으나 [[보클뤼즈]]에 은거하면서 [[라틴어]] 저술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니발]]을 격파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스키피오]]를 찬미하는 장시 <아프리카>로 1341년 봄, [[로마]]에서 [[계관시인]](桂冠詩人)이 되었다. 이것은 그의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학식과 애국심을 짐작하기에는 족하였으나 시적시의 가치는정취가 낮은있는 가치는 것이었다낮았다. 1343년 [[콜라 디 리엔초]](1313-1354)를 알게 되어 그의그 사람의 [[로마 공화정]] 부흥이라는 대망에 공명하였으나 1350년 콜라는 실각되고실각하고 라우라의 부음을 접했다. 1350년 [[피렌체]]에서 [[보카치오]]를 만나 평생토록 친교를 맺었다. 말년에는 [[파도바]] 근교의 [[아르콰]]에서 살았다. 1374년 7월 14일 애독하던 [[베르길리우스]]의 시집을 베개 삼아 떠났다.
 
== 평가 ==
그는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단테|단테 알리기에리]]에 이어 출현한 [[이탈리아]] 최고의최고 [[시인]]으로서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가 특히 페트라르카의프란체스코 영향을페트라르카에게 크게 받았으며받은 이는영향은 페트라르카주의(페트라르카주의라고<ref>pétrarquisme)이라</ref> 명명되기도 하였다.하였으며, 또한14행 14행시는시는 13세기 시칠리아 派((派)에서 유래한유래했다는 것이라고설이 하나,있으나 그가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이 형식으로 쓴 300여 장의 운조(韻調(운조)나 시상이시상 300여 장이 모두 아름다웠으므로, 프란체스코 그가페트라르카가 사용한 이 형식은 유럽 제국(諸國(제국)에 있어서에서 표준형이 되었다.되었으나 그러나프란체스코 그는페트라르카는 [[이탈리아어]] 작품을 중시하지 않았으므로 <서정시집>과 연애, 명성, 정절, 죽음, 시간 등이시간이 각기 소멸하고 영원한영원만이 것만이최후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는승리한다는 구상의 장시 <개선(凱旋(개선)>이란 작품이 있을 뿐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고,기타 작품 중에서도 금욕생활을 찬양한 <고독한 생활에 관하여>, <종교자의 무위에 관하여>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빌어 마음의 괴로움을 풀려고 한 <나의 비밀> 등이 중요한 것이다시이다. 그는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세속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세속적못하는 쾌락이나 명성을 구하는 한편일변, 종교에 종교적딸린 고독에 묻혀,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로 번민한 근대인이었다.근대인이었으며, 프란체스코 그에페트라르카가 의하여발견한 발견된여러 고전들의고전의 고본(稿本(고본)도 많으며많고 등산의등산하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 산에맛보고자 오른등산한 유럽 최초의최초 [[등산가]]이기도 하다.
 
== 작품 ==
* '''칸초니에레'''(Canzoniere)
:페트라르카의 서정시집이다. 1342년경 착수하여 1348년에 일단 완성, 그 후에도 얼마나 퇴고를 계속 하였는가 하는 것은퇴고하였지는 [[바티칸]]에 소장되어 있는소장된 원고로 짐작하고도 남는다. 2부로 나뉘어 제1부는제1 부는 라우라의 생전에 쓴 시로 소네트 225편, 칸초네 21편21편을 위시해 합계 246편이며246편이고 제2부는제2 그녀부는 사후의그 여성 사후에 쓴 시로 [[소네트]] 90편, [[칸초네]] 8편8편을 비롯해 합계 100편으로 되어 있다. 라우라는 베아트리체와 달리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육체를 지녔으되 사후는 '손바닥만한 땅에 묻히는' '줌의 흙'이 된 여성으로,여성으로서 시인에게는 그녀의그 여성의 눈이나 가슴, 금발의 아름다움은미는 기쁨이자 괴로움으로, 그 심정의 기복을 자연의 묘사, 고전의 인용, 용어의 멋진 표현을 통하여이용하여 완벽한 시형으로 다듬은 시집으로 기나긴 성모의 찬송으로 끝맺고 있다끝맺는다. 기타 밖에 정쟁(政爭(정쟁)이나 [[교황청]] 비난의비난하는 시 "나의 이탈리아여"로 시작하여 "나는 외치고 외치노라. 평화, 평화, 평화라고"하는 명구로 끝나는 애국시 등도애국시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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