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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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시대 (1949년~1978년)==
1930년대부터 [[중화민국]] [[난징]] [[국민당 정부]]와 [[국공 내전]]을 펼쳐 온 [[중국공산당]]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시 시작된 내전에서 연달아 국민당 정부군에게 승리를 거두고 [[1949년]] 4월에는 공산당군이 [[중화민국|난징 국민 정부]]의 수도 난징을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난징 국민 정부는 붕괴 상태에 빠져, 중국국민당과 내분이 일어나 공산당과 행동을 같이 하거나 국외로 피난하는 국민당 정부 관계자가 다수 나왔다. 그 때문에 공산당은 [[중화민국|난징 국민 정부]]가 붕괴·소멸했다고 판단해 같은 해 10월에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했다.
 
===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
붕괴 상태에 빠진 난징 국민당 정부는 [[장제스]]의 지도하에 대만으로 철수하여(대만 국민당 정부), 현재까지 [[중화민국]] 정부 체제를 사실상 유지해오고 있다. 점차 [[냉전]]이 종식되면서 현재 중화민국을 중국의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있는 나라는 30개국 미만으로 감소했지만, ‘두 중국’정부가 병립하는 사태는 [[타이완 문제]]로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 토지개혁법 ===
건국 당시 정치를 담당한 것은 중국인민 정치협상회의였다. 이 단계에서는 공산당 독재체제는 확립되지 않았고, ‘신민주주의론’의 아래 공산당, 중국민주동맹, 중국농공민주당,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등의 여러 세력이 이 회의의 중심이 되었다. [[1950년]] [[토지개혁법]]이 공표되어 전국에서 토지 재분배를 시행 했다. 법 내용 자체는 온건한 것이었지만, 다년간의 지주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빈농 등의 세력에 의해서 운동은 급진화되었고, 단기간에 토지 개혁은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