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앙 (자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1번째 줄:
'''풍공왕 조완'''(豊恭王 曹琬, ? ~ ?)은 황초 3년에 중도공에서 장자공(長子公)으로 봉읍이 옮기웠고, [[가평 (위)|가평]] 6년([[254년]])에는 풍민왕의 작위도 세습하여 풍왕이 되었다.<ref name="s20"/> 죽어서 시호를 공왕(恭王)이라 했고, 아들 조렴(曹廉)이 후사가 되었다.<ref name="s20"/>
조비는 즉위하고서, 항상 “내 형은 효렴으로서 제 분수를 지켰다. 만일 [[
정부인은 조앙이 죽은 후 항상 “내 아들을 죽이고, 다시 생각하지도 않는구나.”라고 하며 도를 넘어 울었고, 조조는 화가 나서 정부인을 본가로 쫓아보냈다. 이후 조조는 다시 정부인을 부르고자 했으나 정부인은 끝내 응하지 않아 둘 사이의 혼인은 깨졌다.<ref name="w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