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촉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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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陳到, ? ~ ?<ref>진도에 대한 끝부분 기록이 정서장군으로 승진한 것인데, 《삼국지 강유전》에서 [[강유]](姜維)가 228년~234년 사이에 정서장군이 된 것으로 보아 진도는 이미 그 전에 죽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ref>)는 [[중국]] [[후한]]
== 행적 ==
[[196년]], [[유비]](劉備)가 예주 자사로 있을 당시 그에 수하로 들어간다.
명성이나 벼슬이 [[조운 (촉한)|조운]](趙雲)에 버금갔으며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무장이었다고 한다.
[[유비]]가 죽은 후, 223년 영안도독(永安都督), 정서장군(征西将軍)의 관위에 오르고, 정후(亭侯)에 봉해졌다. 226년 전장군(前將軍) [[이엄 (촉한)|이엄]](李嚴)은 영안에서 강주로 진을 옮겼지만, 진도는 계속 영안에 주둔하면서 이를 수비했다.▼
[[223년]], 유비가 죽고 난 후 영안도독(永安都督), 정서장군(征西将軍)의 관위에 오르고 정후(亭侯)에 봉해졌다.
정사 [[삼국지]]에서의 진도에 관한 기술은 이것뿐이고, 후에 편찬된 양희(楊戱)의 《계한보신찬》(季漢輔臣賛)에서는 진도를 충성스러운 신하로 평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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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에서의 진도에 관한 기술은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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