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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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였다. 1970년대 시인의 삶을 담은 시가 <<세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수록된 <활엽수림에서>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5·1원 미학과 재학시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고, 여기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돼 1981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제적된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의 시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황지우는 광주를 남한에 쌓여왔던 자본주의와 독재 체제의 모순이 폭발한 공간으로 보았다. 서울대 제적 후,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시세계 다시 진학하였다. "결정론과 자유론 논쟁에 대한 실존주의적 접근:J.P. Sartre와 M. Merleau-Ponty의 자유개념을 중심으로" 라는 논문으로 [[1984년]]에 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1980년대 ===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재학시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고, 여기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돼 1981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제적된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의 시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황지우는 광주를 남한에 쌓여왔던 자본주의와 독재 체제의 모순이 폭발한 공간으로 보았다. 서울대 제적 후,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다시 진학하였다. "결정론과 자유론 논쟁에 대한 실존주의적 접근:J.P. Sartre와 M. Merleau-Ponty의 자유개념을 중심으로" 라는 논문으로 [[1984년]]에 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계속해서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 진학하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연혁>(沿革)이 입선되고, 《[[문학과 지성]]》 에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시와 경제》 동인으로도 활동하였다. [[1985년]]부터 한신대학교·전남대학교·서강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 후, [[1994년 3월]]에 한신대학교 인문학부 문예창작과 조교수가 되었고, [[1997년 2월]]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 극작과 과장을 맡았다. [[2006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다가, [[2009년]]에 사퇴하였다.
 
== 시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