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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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서 사관은 윤자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인용문|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윤자운은 성질이 편협하고 다른 재능(才能)이 없는데, 두 번이나 정승으로 들어가서 건명(建明)한 바가 없었고,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에 도적이 조정을 속이고자 하여 위서(僞書)를 지어서 협박해 서명(署名)하게 하니, 윤자운이 머리를 숙이고 그대로 따랐으며, 매양 도적을 대하여 반드시 대인(大人)이라고 일컬으니, 듣는 자가 비루하게 여겼다. 아침 저녁으로 일찍이 어머니의 집을 지나면서 보살피지 아니함이 많았으므로, 그 마을 사람이 서로 이르기를, ‘이 할머니는 아들이 없다.’고 하였다.” 하였다.|《성종실록》 9년(1478) 5월 14일 5번째 기사}}
 
== 가족 관계 ==
* 증조부 : 윤소종(尹紹宗)
** 할아버지 : 윤회(尹淮)
*** 아버지 : 윤경연(尹景淵)
*** 어머니 : 이백인의 딸
 
== 관련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