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궤구고두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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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일본제국]]의 특명전권대사 [[소에지마 다네오미]]가 [[동치제]]를 알현할 때 청나라 예부에서 삼궤구고두례를 요구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여 입례(立禮)를 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mofa.go.jp/mofaj/annai/honsho/shiryo/archives/6.html#e1|제목=일본 외교 문서 디지털 아카이브 제6권 (메이지 6년/1873년) 청국과의 수호조규통상장정체결에 관한 건|쪽=148|저자=일본 외무성|날짜= |확인날짜=2013-06-16}}</ref>
 
이후 [[청나라]]는 나날히 교묘해지고 해가 지날수록 심해지는 [[열강|서구 열강]]의 침략에 쇠퇴하는 가운데 열강의 외교관들은 하나같이 청나라 예부의 삼궤구고두례 요청을 거절하고 입례(立禮)로 알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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