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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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명량 해전}}
 
1597년 10월 25일([[음력 9월 16일]]), 일본군 수백 척의 이동 정보를 접한 이순신은, 명량 해협에서 대적하기 위해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출전했다. 명량 해협은 ‘울돌목’이라고도 불리었는데, 밀물과 썰물 때에는 급류로 변하는 곳이었다. 이순신은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새로 합류한 1척을 추가한 13척의 전선으로 일본 함대를 유인하여 이 해협에서 333척의 일본 함대 중에서 공식기록이었던 31척의 전선을 격파하였다.
 
이를 [[명량 해전]]이라고 하며 이 해전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던 [[정유재란]]의 전세를 역전시켰다. 일본은 곤궁에 빠져 명나라 장군에게 뇌물을 보내어 화의를 꾀하였으나 이순신은 이를 반대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어 일본군이 철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