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미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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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회화 ==
로마의 회화는 헬레니즘 회화의 수용에서부터 시작한다. 헬레니즘 회화의 원작은 헬레니즘의 여러 지역에서는 거의 잔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원후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산의 분화로분화(噴火)로 돌연히 매몰된 폼페이 및 헤르쿨라네움에 남아 있는 벽화를 통하여 헬레니즘 시대 및 로마 시대의 회화를 알아낼 수가 있다. 건축이나 조각처럼 회화에 있어서도 기원전 1세기 이후 많은 그리스 화가가 부유한 로마인을 맞이하게 되어, 그들의 저택이나 별장을 꾸몄다. 프레스코 및 모자이크에 의한 그들의 화풍은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감각적이며 신비적이고 산문적인 주제가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 화가인 필록세노스의 걸작 <잇소스의 전쟁>을 모자이크로 한 작품이 있는데 이것은 고전 말기의 양식을 전하는 귀중한 작품이다람쥐~작품이다. 프레스코로 된 유명한 <디오니소스의 밀의(密儀)>(폼페이)나 <텔레포스의 유아(幼兒)>(나폴리 미술관)는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에, 이탈리아적인 취미를 가미한 새로운 양식이었다. 디오니소스의 밀의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믿었던 밀교(密敎)인데, 화려하고 붉은 색의 배경에 신앙 생활의 신비적인 경향이 묻어나 있다. 그리고 <텔레포스의 유아>에서는 아르카디아를 상징한 거대한 여신의 발 밑에서 텔레포스가 무심하게 사슴의 젖을 마시는 자태와 그의 아버지 헤라클레스의 강인한 자태가, 인간적 감정을 혼입하여 회화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또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에 있어서는 대개 생각할 수 없는 풍경화·정물화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가 이 시대에 탄생했다. 이와 같은 헬레니즘 회화로서 육성된 로마 시대의 회화는 건축 공간의 충실에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 그 양식에는 일반적으로는 제1양식에서 제4양식에 이르는 양식의 발전을 볼 수가 있다. 제1양식은 벽면이 대리석으로서 중앙부와 소벽(小壁), 벽의 아래 부분에 둘러댄 판자의 세가지로 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방법인데, 원근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벽면이 부각(浮刻)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양식은 이미 헬레니즘 시대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하였고, 기원전 80년경가지 쓰이고 있었다. 제2양식은 공화제 시대 로마에서 많이 쓰인 양식이다. 이것은 제1양식을 다시 복잡하게 하고, 이오니아식이나 코린트식의 기둥을 사용하여 깊이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어디까지나 거기에 다른 방이 잇달아 있는 듯한 환각을 일으키도록 그려져 있다. 제3양식은 이른바 제정 초기 양식(帝政初期樣式)이라고도 불리며,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기에 널리 사용된 양식으로서, 좌우에 배치된 기둥 사이에서는 중정(中庭)이 보이고, 멀리 아름다운 건물을 그리는 등 그 위에 복잡한 원근법을 써서, 세부의 장식은 더욱 화려하게 하였다. 이 양식의 특징은 그 모티프에 사발이나 영락(瓔珞)이나 당초(唐草) 등 이집트의 모티프를 많이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취미는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 로마인 사이에서 유행하고, 모자이크의 정물화나 풍경화에도 자주 쓰이고 있다. 제4양식은 63년의 지진 이후의 건축에 흔히 보이는 양식인데, 환상적인 표현을 지닌다. 이 양식에 있어서는 장식이 극단적으로 취급되어 있다.
 
== 로마 공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