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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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윤호중은 [[경기도]] [[장단군]] 출신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 교사였던 조각가 [[김복진]]에게 사사했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목조(木彫)를 전공하였고, [[1941년]] 김복진의 출신교인 [[도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4년]] [[결전미술전]]에 친일 조소 작품을 출품한 경력이 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10/005000000200410011747509.html
|제목=운보 김기창 화폭 속 친일
|작성일자=2004-10-01
|확인일자=2008-05-31
|출판사=한겨레
|저자= 길윤형
}}</ref> 이 외에도 [[194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일본]]의 전통 풍습인 [[천인침]]을 소재로 한 〈천인침(千人針)〉을 출품해 특선을 차지하는 등 친일 작품을 제작했고, [[대화숙]]에서 미술을 지도한 경력 등 친일 행적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이로 인해 광복 직후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될 때 배제되기도 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를 지내며 [[대한민국]] 조각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고, [[1955년]]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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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순우
}}</ref>
 
== 친일 논란 관련 ==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4년]] [[결전미술전]]에 친일 조소 작품을 출품한 경력이 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10/005000000200410011747509.html
|제목=운보 김기창 화폭 속 친일
|작성일자=2004-10-01
|확인일자=2008-05-31
|출판사=한겨레
|저자= 길윤형
}}</ref> 이 외에도 [[194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일본]]의 전통 풍습인 [[천인침]]을 소재로 한 〈천인침(千人針)〉을 출품해 특선을 차지하는 등 친일 작품을 제작했고, [[대화숙]]에서 미술을 지도한 경력 등 친일 행적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이로 인해 광복 직후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될 때 배제되기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미술 분야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