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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토착어로 '부루'라고 하며, 한자로는 '와거'라고 불렀던 상추가 생채음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향약구급방'에 있다. 이익의 '성호사설' 5권에는 고려인들이 생채 잎에 밥을 싸서 먹었다는 기록을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은 '[[해동역사]]'의 물산지편에서 청대의 문헌인 '천록여식'을 인용하며, 고려 상추는 품질이 좋아 천금을 줘야 구할 수 있을 만큼 값이 비싸다는 의미로 천금채라고 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려사람들은 신선한 채소나 살짝 익힌 채소, 해조류에 밥을 싸 먹었다. 조선시대에는 상추 외에도 숙주나물, 깻잎, 콩잎, 취나물, 미나리, 머위잎, 돌나물, 소루쟁이, 아주까리잎, 호박잎 등을 생채로 먹었다. <ref>황영철, 화합과 절식의 전통음식 생채, 문화재사랑, 2013년 8월호,문화재청</ref>
조선왕조의 궁중에서도 궁중 생채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강한 향신료를 쓰지 않아 담백한 맛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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