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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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
| 몸무게 =
| 칭호 = 현덕정목온정자행황태자비
| 칭호기간 =
| 작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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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원 =
| 종교 =
| 배우자 = 대한제국 제3대 황실 수장<br/> [[의민태자|의민황태자]]
| 배우자 =
| 동거인 =
| 자녀 = 회은황태손 [[이구 (1931년)|이구]]
| 부모 = 아버지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br/> 어머니 [[나시모토노미야 이쓰코]]
| 친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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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자'''({{ruby|李|り}}{{ruby|方子|まさこ|리 마사코}}, [[1901년]] [[11월 4일]] ~ [[1989년]] [[4월 30일]]) 또는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ja-y|梨本宮 方子|なしもとのみや まさこ}})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로 [[의민태자]] 이은(李垠)의 아내이다비이다. [[대동종약원]]에서 올린 [[사시 (시호)|사시]](私諡)는 '''현덕정목온정자행황태자비'''(顯德貞穆溫靖慈行皇太子妃)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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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rince Yung&Nasimoto Masako.jpg|thumb|140px|right|영친왕의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무렵([[1917년]]), 영친왕과 함께]]
[[그림:Lee Bangja 1919.png|200px|thumb|[[1919년]] 뉴욕트리뷴(현 [[뉴욕타임즈]])에 실린 이방자]]
[[1901년]] [[11월 4일]], [[메이지 천황]]의 조카이자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모리마사]](守正)와 그의 부인 [[나시모토노미야 이쓰코|이쓰코]](伊都子)의 장녀 마사코(方子)로서 [[도쿄]]에서 태어났다. 사촌인 [[고준 황후|구니노미야 나가코]](후에 고준 황후가 됨) 및 [[화족]] 이치조 도키코 등과 함께 황태자 [[히로히토]]의 강력한 배우자 후보로 떠올랐으나, 미미한 정치적 기반과 불임의 가능성을 이유로 [[1916년]],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이은과[[대한제국]] 황태자 [[의민태자|이은]]과 약혼하였다. [[1920년]], [[일본 황실]]의 교육기관인 [[학습원]](學習院) 여자고등과를 거쳐 같은 해 [[4월 28일]], 도쿄 [[롯폰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21년]], 장남 진(晉)을 낳았다. 그러나 이듬해, 첫돌도 채 지나지 않은 진을 [[조선]] 방문 중에 잃는 슬픔을 경험했다.
 
[[1931년]], 둘째 [[이구 (1931년)|구]](玖)를 낳고 다시 단란한 생활을 하였으나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이왕가]](李王家)가 폐지됨에 따라 신분이 강등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의민태자]]의 복권을 두려워 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방해로 귀국마저 좌절되자 [[재일 한국인]]으로서 고된 삶을 살았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 새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초청으로 [[1963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창덕궁]](昌德宮) [[낙선재]]에 기거하였다.
 
===사회봉사활동===
마사코는이방자는 [[한국]]에서 지내며 평소 남편과 구상해 온 사회봉사를 시작해 [[1963년]], [[신체장애자재활협의회]] 부회장에 취임하기도 하였으며 [[1966년]], 심신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해 자행회(慈行會)를, [[1967년]], [[농아]] 및 [[소아마비]]장애인들의 사회 적응을 위해 [[명휘원]](明暉園)을 각각 설립하는 한편, 해외 모금 활동과 [[칠보]](七寶)를 통해 복지 사업 자금을 모았다. [[1970년]], 남편을 잃고 [[1971년]], [[정신지체]]장애 어린이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수원]]에 [[자혜학교]](慈惠學校)를 설립하였다. [[1973년]], 숙원 사업이었던 [[영친왕기념사업회]]를 발족시켰으며 [[1982년]]에는 [[광명시]]의 [[명혜학교]](明惠學校)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등, 국가의 생활비 보조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도 사회봉사에 정열을 쏟아 한국 장애인들의 어머니로 존경받았다. [[일본]]에서는 [[한국인]]들의 존경을 받은 [[일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서거===
말년에는 [[직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후 [[일본]]에 있는 아들 구(玖)와 함께 지내기도 하다가 [[1989년]] [[4월 30일]],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운명하였다. 장례는 [[1989년]] [[5월 8일]], 각계 인사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며 [[경기도]] [[남양주]] 금곡동 홍유릉 영원(英園)에 이은과의민태자와 합장되었으나합장되었다. 일본으로생전에 송환하여야[[국민훈장]] 한다모란장을 수훈하였고 그 밖에도 서울특별시문화상, 적십자박애장 금장, [[5·16민족상]], [[소파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에 추서되었다.
 
[[2006년]] 11월, [[일본]] [[후지TV]]에서 의민태자 부부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무지개를 이은 왕비]](虹を架ける王妃)가 방영되어 논란이 되었다. [[2007년]]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탤런트 [[김희애]]를 주연으로 이방자의 일대기를 그릴 드라마가 기획 중이었으며, 그 이전에도 탤런트 [[이휘향]]이 이방자 역할로 출연한 [[드라마]]가 [[한국방송]]에서 방영된 바 있다.
 
=== 칭호에 대해 ===
{{참고|영친왕#칭호에 대해}}
마사코가 맞다.
황태자비를 부르는 명칭은 영친왕비, 영왕비, 이방자 여사 등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은의 영왕 칭호는 결혼 전에 폐지되었기 때문에 황태자비 또한 태자비(세자비)로서 혼인한 것이며, 친왕(왕자)과 황태자(왕세자)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영친왕비가 아닌 의민황태자비로 부르는 것이 옳다. 흔히 이방자 여사라고 부르는데, 이방자라는 이름 자체가 일본식으로 나시모토노미야<ref name="miya">미야(宮)는 경칭임</ref> 마사코(梨本宮<ref name="miya"/> 方子)에서 신부의 성인 나시모토(梨本)를 떼고 신랑의 성인 이(李)를 붙여 이방자(李方子)로 칭하게 된 것이고 {{출처|여사라는 명칭 또한 황태자비의 존칭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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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보기==
* [[영친왕]]
 
* [[회은황태손]]
* [[순헌황귀비]]
*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 [[나시모토노미야 이쓰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