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유품: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47번째 줄:
}}
 
윤봉길의사 유품 가운데 선서문과선서문은 이력서일제시대 및 유서는 일제 때 독립운동가였던독립운동가 [[윤봉길]](尹奉吉, 1908∼1932)이 생전에 사용하였던사용하던 일괄유품 13종 68점 중 두 점의 유품이다하나이다. 13종의 유품 중 10종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기념관(忠義祠紀念館)에 보관 중이고, 2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머지 1종은 서울 윤남의(尹南儀)의 집에 소장되어 있다있으며 모두 보물 제568호의 1-10호로 일괄지정되었는데, 그 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제568-1호와 제568-2호이다. 윤봉길의사선서문(尹奉吉義士宣誓文) 1장은 그중 보물 제568-1호로, 윤봉길이 23세 되던 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입단하면서 직접 손으로 쓴 선서문이다. 가로 21.5cm, 세로 27cm이다.
윤봉길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나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하였고, 19세에는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 22세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농촌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23세 되던 해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는 상해의 홍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체포되어 24세를 일기로 사형을 당하였다.
그의 유품들은 모두 보물 제568호의 1-10호로 일괄지정되었는데, 그 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제568-1호와 제568-2호이다. 제568-1호는 윤봉길의사선서문(尹奉吉義士宣誓文) 1장으로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입단하면서 직접 손으로 쓴 선서문이며 가로 21.5cm, 세로 27cm이다.
 
== 이력서 및 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