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촉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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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는 [[192년]]([[초평]] 3년) [[마등]]과 [[한수 (후한)|한수]](韓遂)가 군대를 이끌고 [[장안]](長安)으로 진입하자 한 왕조는 [[한수 (후한)|한수]]를 진서장군에 임명해 금성으로 귀환시키고 [[마등]]을 정서장군에 임명해 미에 주둔시킨다.
 
그리고 건안 초([[196년]] 이후), 마등과 한수의 사이가 벌어져 결국 서로 간의 격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마등의 진영에서는 마초가 한수의 진영에서는 [[염행]]이 나와서 1:1 결투(일기토)를 하게 되었다. 당시 20대 초중반(21~26세)의 건장한 청년장수였던 마초는 염행의 선제공격을 받았고 곧 염행의 창이 부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염행은 그 부러진 창자루로 마초를 사정없이 폭행하여 마초는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그 뒤 [[마등]]은 장안을 습격하지만 패배해 양주로 도망갔다.[위략]
 
[[위략]]에서등장하는 염행과 마초의일기토 여러가지위략의 대한내용이나오고있지만 [[위략]]자체는 위나라위주로썼고 유선이 유비와 어릴 때 헤어져서 노예로 살기도 했다는 등 허황된 내용도있다. 이또한 거짓인데 [[촉서]],[[조운]]전 [[조운]]은 단기(單騎)로 적군 한가운데로 달려들어가 미처 도망가지 못한 유선(劉禪)과 감부인(甘婦人)을 구출하는 대활약을 펼쳐 아문장군(牙門将軍)으로 승진한다. [[제갈량]]이 유비를먼저찾아갔다,란내용도 거짓이다. [[출사표]]선제께서 신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세번이나 몸을 낮추어 초려를 찾아주시고 신에게 친히 형세의 일을 물으시니 신은 감격하여 선제께 이 한 몸 바치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이렇뜻 [[위략]]은 [[배송지]]가 많은 주석을달정도로 말도안되는것 이많다. 만약 [[염행]]이 [[마초]]를그정도로 이겼다면 서량에서 영웅으로 칭했던 마초인데 소문이안날리없고 [[삼국지정사]],[[진수]] 또한 [[마초]]전에서 [[염행]] 의대결 이야기는 나오질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