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화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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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설과 약육강식을 기본 골자로 하는 사회진화론은 찬반 양론이 나뉘게 되었다. 사회진화론에 찬성한 인물로는 [[윤치호]], [[유길준]], [[서재필]], [[박중양]], [[안창호]], [[김규식]], [[이범석 (1900년)|이범석]], [[안호상]], [[이광수]] 등이었고, 사회진화론을 부정한 인물로는 [[이승만]], [[장면]], [[윤보선]], [[김성수 (1891년)|김성수]], [[장덕수]] 등이 있었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계몽 운동을 통한 국민 교육과 강한 군사를 실시하고, 자주적이고도 독립적인 국가로 거듭나고자 하였다. 하지만 사회진화론은 일부 지식인들이 자국의 사회적 수준이 일본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에 스스로 독립 의지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으며, 실제 이에 따라 변절한 이들도 있었다. [[이광수]]와 같이 처음에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가 후에 사회진화론으로 말미암아 열등감을 느껴 변절한 것이 예이다.
 
사회진화론이 [[유교]]적 사상에 끼친 영향 또한 컸다. 그 당시에는 사회는 갈수록 퇴보하고 타락하기 때문에 예전의 이상 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유교적 사상이 일반적이었는데, 사회는 갈수록 진화한다는 사회진화론은 사회를 퇴보한다고 규정한 유교적 인식을 밖으로 몰아세웠다. 따라서 현실을 인식하는 체계 자체가 차차 바뀌어 갔고. 이런 성향은 지식인들에게 계몽 의지를 심게 하여 주었다.ffffffff
 
== 비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