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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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는 [[1969년]] [[8월]]에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고에너지 물리학회에서 처음으로 좌장을 맡았다.{{출처}}-->
 
[[1970년]] [[6월]], 이휘소는 [[코르시카]]의 카쥬스카르제스({{langllang|enfr|[[:en:Cargèse|Cargèse]]}}) 여름학교에 강연자로 초청되었다. 이곳에서 이휘소는 시그마 모형의 자발적으로 부서진 대칭성과 그 [[재규격화]]에 관해 강의하였다. 당시 네덜란드의 젊은 대학원생 [[헤라르뒤스 엇호프트]]는 지도교수였던 [[마르티뉘스 펠트만]]과 함께 [[양-밀스 이론]]의 재규격화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고, 그도 여기서 이휘소의 강의를 들었는데, 이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훗날 회고하였다.<ref name="lsy">
{{웹 인용
|lang=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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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date=2011-05-22
|month=12월
|year=1999년}}</ref> 카쥬스카르제스 여름학교에서 돌아오고 얼마 안 있어서는, [[소비에트 연방]] [[키예프]]에서 열린 제15회 [[고에너지 물리학 국제회의]]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공산권 국가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이 회의는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개최되었다.<ref name="kiev">
{{cite journal
|lang= 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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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erard_'t_Hooft.jpg|섬네일|[[헤라르뒤스 엇호프트]]]]
한편, [[헤라르뒤스 엇호프트]]는 카쥬스카르제스 여름학교의 이휘소에게서 얻은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마르티뉘스 펠트만]]과 함께 [[양-밀스 이론]]의 [[재규격화]]에 성공하였고, 이를 [[1972년]] 여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입자물리학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하였다. 하지만 당시 이들의 [[스킴]]은 일반적인 경우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고, 또 당시 물리학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는데, 이휘소가 팔을 걷고 나서 이를 알기 쉽게 풀어쓰고, 경로적분 형식 등의 다른 [[스킴]]으로까지 확장하여 서술하기도 하여, 그제서야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이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ref>{{cite journal
|lang= en
|꺾쇠표=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