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글래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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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1987년 ~ 1997년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부터 지명받아 입단한 글래빈은 [[1987년]] [[8월 17일]]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그리고 [[1998년]]에는 선발로테이션에 입지를 굳혔지만 7승 17패로 리그에서 최다패를 기록했다. [[1989년]]에는 14승 8패의 좋은 성적과 함께 리그 3위에 해당되는 4완봉을 기록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해가 됐다. [[1990년]]은 10승 12패로 시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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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는 [[그레그 매덕스|매덕스]]가 팀에 합류하고, [[존 스몰츠]], [[스티브 에이버리]]와 함께 '''4천왕'''이라고 불린다. 22승 6패, 방어율 3.20을 기록하여, [[1967년]] ~ [[1972년]]사이에 [[퍼거슨 젠킨스]]가 3년연속 20승 이상을 기록 한 이래 처음으로 3년연속으로 20승을 기록하며, 동시에 3년연속 다승왕도 딴다. [[1994년]] [[8월]]에는 노사협상이 결렬되고, 선수들은 동맹 파업을 결행한다. 그와 동시에 [[메이저리그]]선수회의 회장이였던 글래빈은 팬으로부터 노여움을 샀다. 동맹 파업이 해제되었던 [[1995년]]에는 선발등판을 할 때마다 야유가 쏟아졌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2승 2패로 활약하여 월드시리즈MVP를 수상한다. 그와 동시에 팀은 연고지를 옮긴지 38년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다.
 
==== 1998년 ~ 2002년 ====
 
[[1998년]]에는 20승 6패와 함께 커리어 하이인 방어율 2.47을 기록하며, 그와 함께 4번째로 다승왕 타이틀을 따냈다. [[사이 영 상]]의 투표에서는 [[트레버 호프만]]이 1위로 글래빈은 그 아래인 2위를 맴돌았지만, 획득포인트에서 호프만보다 올라서 개인 통산 2번째로 [[사이 영 상]]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의 개정이 행해졌던 [[1999년]]에는 리그 최다인 259피안타를 기록하는 등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6월 4일]]까지 3승 7패, 방어율 5.00이였지만, 시즌을 끝낼 당시에는 전과 같은 상태로 복귀하여 14승 11패, 방어율 4.12로 시즌을 마친다.
 
[[2000년]]에는 봄에 있었던 트레이닝에서 [[그레그 매덕스|매덕스]]에게 '''컷 패스트볼'''을 배웠다. 그리고 그 해에는 21승 9패, 방어율 3.40으로 5번째로 시즌 20승 이상과 함께 5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7월 3131일]]에는 [[메이저리그]]역사상 96번째가 되는 200승을 달성한다. [[2002년]] [[6월 26일]]에는 내셔널리그에서 5번째로 같은 팀에서 2,000탈삼진을 달성한다.
 
[[2002년]]에는 [[6월]]까지 방어율 1점대를 유지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보이며, 18승 10패, 방어율 2.96으로 시즌을 끝마쳤다. 이때까지 16시즌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브레이브스]]맨으로서 보내며 토박이 인기선수였지만, 같은 해 신 노사협상 때 선수대표로서 앞장 선 글래빈을 「탐욕이 강한 선수의 대표」라며 반감을 가진 선수도 있었다. 시즌 종료후에는 FA가 되어 4년계약을 희망했지만, 구단은 후반기에 좋지 못한 컨디션을 이유로 거부했다. [[2002년]] [[12월 5일]]에 [[뉴욕 메츠]]와 3년 총액 3,500만 달러, 4년째의 옵션을 포함하면 4,250만 달러로 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