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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반전 평화 운동]]에 참여한 데 대해“내일은 또 [[종묘공원]]에서 파병 반대 시위를 벌일 예정이야. 난 요새 보람을 느껴. [[동인련]]에서 일하면서 나도 이 사회를 위해 뭔가 일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 [[무지개]] 깃발을 세우고 [[동성애]]자들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좋고.” 뿌듯한 마음은 일기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ref name="ripists"/> 이어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결심하게 되었다.
 
[[개신교]]나 [[천주교]] 등 기독교 신앙인들 중에서도 그를 악마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험담을 가하기도 했다.<ref name="yackis">[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584469.html 소년의 자살 10년 지났지만…동성애 따가운 시선은 여전] 한겨레 2013.04.24</ref> 독실한 [[천주교]]도였던 윤군은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계의 비난 앞에 크게 절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584469.html 소년의 자살 10년 지났지만…동성애 따가운 시선은 여전] 한겨레신문 2013.04.24</ref>
==== 시련과 좌절 ====
[[개신교]]나 [[천주교]] 등 기독교 신앙인들 중에서도 그를 악마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험담을 가하기도 했다.<ref name="yackis">[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584469.html 소년의 자살 10년 지났지만…동성애 따가운 시선은 여전] 한겨레 2013.04.24</ref>
 
동성애자들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이해된다”고 입을 모은다.<ref name="sungjung"/>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인 ‘친구사이’의 전명안 대표는 “어려서부터 경험하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끝끝내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라고 표현했다. 숨막히는 이 사회의 ‘공기’가 동성애자들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윤씨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ref name="sungjung"/>
 
또 독실한 천주교도였던 윤군은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계의 비난 앞에 크게 절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584469.html 소년의 자살 10년 지났지만…동성애 따가운 시선은 여전] 한겨레신문 2013.04.24</ref>
 
==== 동성애자 인간 선언과 자살 ====
[[2003년]] [[4월]] 당시 [[동성애]]를 유해 단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그는 이에 반발하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유서에서 “몰지각한 편견으로 이 사회는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며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적고 있다.<ref name="yukwood"/> 그는 "죽으면, 이젠 내가 동성애자라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서에 마지막 글귀를 남겼다.<ref name="yocksk">[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59612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왜 문제가 되나요?"] 오마이뉴스 2013.04.28</ref> 또 “형,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 세대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ref name="sungjung"/> 동성애자들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이해된다”고 입을 모은다.<ref name="sungjung"/>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인 ‘친구사이’의 전명안 대표는 “어려서부터 경험하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끝끝내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라고 표현했다. 숨막히는 이 사회의 ‘공기’가 동성애자들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윤씨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ref name="sungjung"/>
 
[[4월 26일]] 저녁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 시신은 27일 아침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 사무실 문고리에 목을 매달고 앉은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됐다.<ref name="sungjung"/> 유작으로는 《내 혼은 꽃비 되어》 (2013)가 있다. 사후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반감을 가졌던 일부 언론, 방송들에서는 그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기도 했다. 당시 그의 나이 향년 19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