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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苦諦, [[:en:Dukkha|Duhakaha Satya]])는 범부(凡夫), 즉 깨치지 못한 사람의 삶은 [[고 (불교)|고]](苦)라고 하는 진리이다.<ref name="글로벌-원시불교의 사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인도의 사상/불교#원시불교의 사상|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원시불교의 사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즉, 인간은 색{{.cw}}수{{.cw}}상{{.cw}}행{{.cw}}식의 [[오온]]으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깨치지 못한 사람, 즉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삶은 [[고 (불교)|고통]]이라는 통찰이다.
깨치지 못한 사람의 삶이 고 일가요? 이런 엉터리가 어딧죠?
고는 팔정도에서 벗어난 행동이 나와 남을 괴롭게 하는것이 고입니다 종교가 있던 없던 자신의 사람이 바르고 지헤로운 사람이 사는 삶이 고통일가요? 결코 아닙니다
==== 삼고와 팔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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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 ====
'''고고'''(苦苦)는 누구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고 (불교)|고통]]인 생로병사의 [[고 (불교)|고통]]을 말한다. 생로병사 중 특히 생과 사는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며,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는 배움을 위해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60조 세포의 해독이 끝났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부처님 말씀 일까요? 어떻게 다시 태어나죠? 깨달음을 성취 하던 못하던 아무 관계없습니다 사후세계에대해 부처님이 말슴 하신적있나요? 그런데 어떻게 다시 태어나죠? 이 글을 올린분은 마땅히 해명하셔야 할겁니다
 
<ol start=1>
<li>생고(生苦): 태어나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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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사고(死苦): 죽는 고통
</ol>
 
이러한 자연적인 현상을 부처님이 괴로움이라 했을까요?
 
==== 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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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는 고통
</ol>
 
처다보기 싫은 사람하고 헤어지는것이 고통일가요?
 
==== 행고 ====
'''행고'''(行苦)는 [[오온]](五蘊) 또는 [[오취온]](五取蘊)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 자신에 대하여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함에 의해 비롯되는 고통으로 '''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도 한다. 오취온이 무언지 정확하게 이해 하지 못한 사람글
오취온은 팔정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오취온이라합니다
 
<ol start=8>
<li>오취온고(五取蘊苦) 또는 오음성고(五陰盛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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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제 ===
'''멸제'''(滅諦, Nirodha Satya)는 [[고 (불교)|고통]]의 소멸에 관한 진리, 혹은 [[고 (불교)|고통]]의 원인의 완전한 소멸에 관한 진리다. [[고 (불교)|고통]]의 원인인 [[갈애]](渴愛){{.cw}}[[아집]](我集) 또는 [[망집]](妄執)이 완전히 소멸될 수 있음을 통찰하는 것이다.<ref name="글로벌-원시불교의 사상"/> [[고 (불교)|고통]]의 원인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열반]](涅槃) 또는 [[해탈]](解脫)이라 한다.<ref name="글로벌-원시불교의 사상"/>
 
팔정도를 정확하게 이해 하지 못한데서오는 결과물입니다
팔정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지혜롭게 사는 사람한테 고는 없습니다
부처님은 팔정도를 바르게 이해 하고 행하면 여기서 열반에든 자신을 본다 했습니다
고 고통 아집 망집 이런것은 팔정도를 행하는 분한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나도 없고 너도 없고 하는게 아니고 마땅히 사람이라면 해야할 행동이 남도 이롭고 나도 이롭습니다
이런것에 고통이니 아집이니 망집이니가 끼어 들수 있나요?
있다면 답하시길 바랍니다
 
=== 도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