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젤라시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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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 풍습 금지==
마침내 젤라시오 1세는 고대 로마 시대 이후로 오랫동안 지내왔던 [[루페르칼리아]] 축제를 금지시켰다. 그는 루페르칼리아 축제를 지속시키려고 시도한 원로원 의원 안드로마쿠스에게 그를 책망하는 내용의 서한을 써서 보냈다. 이 서한을 보면 부수적으로 루페르칼리아 축제의 일부 내용이 세세하게 담겨져 있어, 역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젤라시오 1세에 의해 루페르칼리아 축제가 사라졌지만, 동시에 오늘날 그가 남긴 서한을 통해 당시 축제의 성격(다산과 정화정결 의식)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 셈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축제의 이름은 정화를 뜻하는 라틴어 페브루아레(februare)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단어에서 영어로 2월을 뜻하는 단어 페브러리(February)가 탄생했다. 또한, 루페르칼리아 축제가 금지된 대신에 [[예수 성탄 대축일]]로부터 40일 후인 2월 2일에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에 대한 젤라시오 1세의 유연한 태도는 오히려 [[오도아케르]]에 이어 [[이탈리아]]의 [[왕]]이 된 [[아리우스파]]인 [[테오도릭 대왕]]과 좋은 관계를 맺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