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1.214.113.4(토론)의 편집을 5pm.hazyblue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18번째 줄:
바리사이 사람은 [[이스라엘]]이 그레코 로만 문화 곧 그리스와 로마문화가 융합된 이방문화의 영향을 받아가는 [[헬레니즘]]화로 이스라엘 고유 문화와 신앙을 잃을 것을 우려하여 [[오경]](토라 또는 율법)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준수하는데 철저함을 보였으며, 유대교 [[신학]]을 계승하는 업적을 남겼다. 종교적으로 [[천사]] 등의 영적인 존재를 받아들였고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파]]와 대립하였다.
==유대독립전쟁이후==
바리새파는 [[유대교]]에서 매우 중요한 종파이다. 기원후 [[70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유대전쟁]] 이후 유대교를 이끄는 종파가 되었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유대전쟁]]으로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예루살렘 성전|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지역을 완전히 진압하여 [[유다왕국]]은 패망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던 [[유대교]]는 성전이 없는 유대교로 변화되었고, 이후 당시 유대교의 주요한 세 종파였던 [[사두개파]]와 [[|열심당|젤롯파]] 바리새파 중에서 바리새파만이 남았다. 정치적 지배 세력을 지지하던 [[사두개파]]와 무력항쟁을 지지하던 [[열심당|젤롯파]]는 [[유다 왕국]] 패망 이후 존속할 수 없었다. 바리새파는 이후 유대교 주류가 되었고, 성전 없이 [[시나고그|회당]]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교를 형성하여 현재 유대교를 이루는 중요한 종파가 되었다.
바리새파는
 
==기독교와의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