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응상: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Ragoss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Ragoss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원응상'''(元應常, [[1869년]] [[8월 20일]] ~ [[1958년]] [[8월 20일]])은 [[조선]] 말기,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미군정]]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원은상]], [[원훈상]], [[원덕상]]의 친형이며 [[원의상]]은 그의 일족이다. 본관은 [[원주 원씨|원주]]이고 호는 범석(凡石)이다. [[1907년]] [[일본]]의 [[재무]][[회계학]] 개설서를 정리, 한글로 소개한 《재정학 (財政學)》을 집필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 의숙]] 보통과와 이재과, 도쿄 법학원의 법과에서 수학했다. [[1900년]] 귀국, [[탁지부]] 주사에 임용되고 이후 [[중추원]] 의관(議官), [[외부]] 번역관보[[번역관]]보(飜譯官補), [[외부]] 참서관(參書官), [[의정부]] [[참서관]], [[탁지부]] 사세국장(司稅局長)[[사세국]] 국장 등을 역임했다. [[1910년]](융희 4년) 한일합병 이후 전라남도 참여관이 되었고, [[1918년]] [[강원도지사]]로 승진, 1921년 [[전라남도지사]]가 되었다가 [[1924년]] 중추원 참의로 전직되었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