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츨라프 니진스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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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설 논란 ==
니진스키는 [[마린스키 극장]]으로 돌아갔으나, 무대 위에서 [[타이츠]] 차림으로 나타나자 퇴장되었다. 그 당시 남자 무용수들은 반바지 착용이 의무적으로 요구되었다. 한 왕족의 일원은 그 모습이 외설적이라 비난하였고, 이에 니진스키는 해고되었다. 이 [[스캔들]]은 니진스키를 자신의 발레단에 자유롭게 출연하시키출연시키기 위해, [[디아길레프]]가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서유럽]]에서의 많은 프로젝트가 니진스키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니진스키는 [[포킨]]의 새 프로덕션으로 [[카를 마리아 폰 베버|베버]]의 음악이 사용된《[[장미의 정령]]》에서 주역을 맡았고,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시카]]》에서, 생명이 없는 춤추는 인형의 역할로 청중들의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니진스키는 3개의 발레 작품의 안무를 맡았다. 1912년 [[드뷔시]]의 음악이 사용된 《[[목신의 오후]]》와 1913년 《[[희롱]]》(Jeux), 1916년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음악의 《[[틸 오일렌슈피겔]]》(Eulenspiegel),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등이다. 니진스키는 전통적인 발레의 것과는 거리가 먼 안무를 창조하였다.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봄의 제전]]》의 공연은, [[스트라빈스키]]의 근대 [[총보]] 더불어, 니진스키의 급진적인 춤 동작은 소동을 야기하였다.
 
니진스키는 타이틀 역할을 맡은《[[목신의 오후]]》의 마지막 장면에서, [[님프]]의 스카프를 이용한 [[자위행위]]의 [[마임]]은 [[스캔들]]을 일으켰다. 파리 절반은 그를 외설죄로 비난하였고, [[로댕]], [[오딜롱 르동]], [[프로스트]]같은 예술가들은 이에 맞섰다. 한편 니진스키가 지도한 몇 작품의 리바이벌은, 정확한 안무 기록에 기초하였고, 그를 사려깊고, 성공적이며, 혁신적인 안무가임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