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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영'''(方一榮, [[1923년]] [[11월 26일]] ~ [[2003년]] [[8월 8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경제인·기업인이며 [[조선일보]](朝鮮日報)의 전 회장이다.
[[1943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1999년까지 근무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조선일보 회장을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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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일신방직의 사외이사로 초빙되기도 하였고, 각종 장학 사업을 후원하였으며 [[1994년]]에는 [[방일영국악상]]을 제정하여 매년 [[한국]]의 우수 국악인들을 시상하였고, [[1995년]] [[5월]]에는 방일영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문화예술인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조선일보 전 사주 [[방응모]]의 손자이자, 이후 조선일보 회장을 지낸 [[방우영]]의 형이다. 첫째 아들 [[방상훈]]은 2006년 현재 [[조선일보]] 대표이사이며, 둘째아들 [[방용훈]]은 [[코리아나 호텔]] 대표이사이다. <ref name="재판결과" >{{뉴스 인용|제목='밤의 대통령' 2세들 재산다툼 한매듭|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5918.html|출판사=한겨레|저자=박현철|작성일자=2008-08-21}}</ref> '''밤의 대통령'''<ref>{{뉴스 인용|제목 = 노친과의 아픈 타협, 그 약속을 지키다|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1956915|출판사 = 오마이뉴스|저자 = 지요하 기자|쪽 = |작성일자 = 2009-07-14|확인일자 = 2010-01-21}}</ref>, '''밤의 황제'''이라는 별칭이 있다. [[평안북도]] 박천출신으로 본관은 온양이며, 아호는 우초(愚礎)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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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1월15일 회장에 취임하는 동시에 동생인 [[방우영]] 현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조선일보]]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임명해 일선경영을 맡겼으며, 1970년까지도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했다. 방우영은 1970년부터 실질적인 경영권을 넘겨받아 조선일보의 성장기를 주도하게 된다. [[1993년]] 3월에는 지병인 당뇨로 인해 조선일보 이사 고문직까지 사퇴하며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는 조선일보 재직기간중이던 [[1980년]]대 조선일보를 급팽창시켜 발행유가부수 1위의 신문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같은 성장과정은 80년 [[광주학살]]이후 전두환 군사정권과의 유착이 큰 밑바탕이 됐고, [[코리아나 호텔]] 특혜의혹 등 적잖은 시비를 낳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혼맥'을 알면 '조·중·동의 대한민국'이 보인다|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1952196|출판사 = 프레시안|저자 = 신학림|쪽 = |작성일자 = 2009-07-02|확인일자 = 2010-01-21}}</ref> 또한 대통령선거 등 주요한 정치전환기마다 강한 정파성을 드러내 '[[안티조선]]' 운동을 자초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족벌언론' 논란에 휘말려있는 상태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2&aid=0000005861& 방일영 조선일보 전 고문 사망 - 숙환으로 8일 새벽,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조선일보 팽창 ]</ref>
 
[[1975년]] 방일영의 사재(私財) 출연금으로 '방일영장학회'를 법인으로 발족했다. 방일영은 방우영과 형제가 보유한 15%를 재단의 기금으로 새로 출연하고, 20년간 운영되어 왔던 '방일영장학회'의 장학기금 15억 여원을 합해 그 해 11월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방일영장학회(재단)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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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생활 ===
방일영은 매우 자유 분방한 삶을 살았다. 사후의 유산다툼에서 큰아들 방상훈 쪽의 변호사는 "잘 아시겠지만, 선대 회장님은 대한민국 기생들 머리를 가장 많이 올리신 분"라고 말했다. <ref name="재판결과" /> 사후 일부 사생아들이 조선일보와 방일영의 아들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 가족 ==
5남 1녀, 혼외 자녀 6명(첫번째첫 번째 첩 남3, 두번째 첩 남1 녀2)이 있다.
 
* 생조부: 방응곤(方應坤), [[방응모]]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