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콩키스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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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
{{참조|우마이야 왕조}}
[[파일:Península ibérica 750.svg|thumb|220px|left|<small>750년 무렵의 이베리아 반도<br />녹색 지역이 우마이야 왕조의 영토</small>]]
711년 부터 756년까지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이 진행되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한 [[서고트족]]이 세운 [[서고트 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왕위 계승권을 놓고 서고트 왕국이 내분에 휩싸이자 모로코의 [[아미르]]였던 타리크는 서고트족의 지원 요청을 명분으로 이베리아를 침공하였다. 주로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으로 구성된 [[무어인]] 전사들은 이 기간 동안 이베리아 전역을 정복하였다. 이로써 [[피레네 산맥]] 이남의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이슬람|이슬람화]] 되었으며 무슬림들은 [[코르도바 (스페인)|코르도바]]를 수도로 삼고 이베리아를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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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투리아스 왕국 ===
{{본문|아스투리아스 왕국}}
[[파일:Basílica de Santiago 02.JPG|150px|left|thumb|<small>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small>]]
718년 펠라기우스가 코바동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성립을 선포하였으나 그의 생애 동안 이 왕국은 [[게릴라]] 전투에 기반한 군사 집단에 불과하였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영토를 확보하고 실질적인 국가로서 자리잡은 것은 펠라시우스의 손자인 [[알폰소 2세 (아스투리아스)|알폰소 2세]] 시기였다.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통치하고 있던 750년 무렵 북서부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 남은 유일한 기독교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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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바라 왕국 ===
{{본문|나바라 왕국}}
[[파일:Península ibérica 1037.svg|250px|thumb|<small>1037년의 이베리아 반도<br />산초 3세 사후 나바라 왕국은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남부의 초록색은 이슬람 영토로 여러 타이파국으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다</small>]]
[[824년]] [[팜플로나]]와 남부 [[나바라 지방|나바라]]를 중심으로 [[바스크인]]들의 반란을 통해 팜플로나 왕국을 건국하였다. 뒤에 [[나바라 왕국]]으로 이름을 바꾼 이 나라는 10세기 부터 레콘키스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1세기 [[산초 3세]] 대왕 대에 이르러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산초 3세는 주변의 카스티야 백작령과 아라곤 백작령, 레온 왕국을 정복하여 이베리아 북부의 강자가 되었다. 산초 3세가 사망한 후 나바라 왕국의 영토는 3분 되어 장남 산초 가르시아 3세가 나바라 왕국을, 차남 페르난도 1세가 [[카스티야 왕국]]을, 그리고 서자인 라미로 1세가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게되었다. <ref name="이강혁"/> {{Rp|65}}